칼리만치 전투
Battle of Kalimanci이 기사는 대체로 또는 전적으로 단일 출처에 의존한다. – · · · 학자 · (2021년 5월) |
칼리만치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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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발칸 전쟁의 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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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전성 | |||||||
불가리아 왕국 | 세르비아 왕국 몬테네그로 왕국 | ||||||
지휘관과 지도자 | |||||||
미하일 사보프[1] 비초 디코프 | 보지다르 얀코비치 | ||||||
관련 단위 | |||||||
4군단 5군단[1] | 3군 | ||||||
힘 | |||||||
2군 | 세르비아: 1군 몬테네그로: 1분할[1] | ||||||
사상자 및 손실 | |||||||
2400명 사망 부상자[2] 4,197명 | 세르비아: 2500명 사망 부상자[1] 4,197명 몬테네그로: 107명 사망 부상자 570명[1] |
칼리만치 전투(불가리아어: итааа пра,, 세르비아어: ттааааа)))))))는 제2차 발칸 전쟁 당시 세르비아 왕국과 불가리아 왕국 사이에 벌어진 전투였다.전투는 18일에 시작되어 1913년 7월 19일에 끝났다.[1]불가리아군은 세르비아군이 그들을 마케도니아에서 몰아내고 스트루마 강 하류 그리스군과 합류하는 것을 막았다.이 전투는 불가리아의 중요한 방어적인 승리로 끝났다.[2]
배경
1913년 6월 30일부터 7월 8일까지 벌어진 브레갈니차 전투에서 불가리아군은 세르비아군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하였다.[3]
전투
1913년 7월 13일, 미하일 사보프 장군은 불가리아 4군과 5군을 통솔했다.[1]그 후 불가리아인들은 마케도니아 북동부의 브레갈니카 강 근처에 있는 칼리만치 마을 주변의 강력한 방어 태세에 몸을 고정시켰다.[1]
7월 18일 세르비아 3군이 공격해 불가리아 진지를 포위했다.[1]세르비아인들은 40피트 떨어진 곳에 은신해 있는 불가리아인들을 몰아내기 위해 적들에게 수류탄을 던졌다.[1]불가리아인들은 굳게 버티고 있었고, 여러 차례 세르비아군의 진격을 허락했다.세르비아인들이 참호에서 200야드 이내에 있을 때, 그들은 고정된 총검을 충전하여 그들을 다시 던졌다.[1]불가리아 포병도 세르비아군의 공격을 격파하는 데 크게 성공했다.[1]불가리아 선들이 열렸고, 그들의 조국에 대한 침공이 격퇴되었고, 그들의 사기는 상당히 커졌다.[1]
세르비아인들이 불가리아 방어망을 뚫었다면 제2의 불가리아 군단을 멸망시키고 불가리아인들을 마케도니아에서 완전히 몰아냈을지도 모른다.[1]이 방어적 승리는 북방의 1군단, 3군단의 성공과 함께 불가리아 서부를 세르비아의 침공으로부터 보호해 주었다.[2]비록 이 승리가 불가리아인들을 고무시켰지만, 그리스 육군이 수많은 교전 끝에 불가리아군을 격파하는 등 남쪽의 상황은 위중했다.[2]
인용구
참조
- Hall, R. (2000). The Balkan Wars 1912-1913. Prelude to the First World War. London: Routledge. ISBN 0-415-2294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