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옌 (삼국지)

Ji Yan (Three Kingdoms)
지옌
暨豔
선정국의 글쓰기 마스터( (選尚書)
재직중
? (?)–224 (224)
모나크쑨취안
개인내역
태어난알 수 없는
장쑤성 쑤저우시
죽은224[1]
직업공식
예의명Zixiu (子休)

지옌([1]吉延, 224년 사망)은 중국 삼국시대 동우국 관리였다. 충동적이고 충동적인 남자였던 그는 자신을 높이 평가했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폄하하는 도덕적 높은 토대를 차지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선발국(현재의 인사과)에서 근무하면서 도덕성 평가를 바탕으로 관료들을 좌천시키거나 해임함으로써 관료주의를 개혁하자는 급진적인 생각을 내놓았다. 그의 생각은 그가 전문적이지 못하고 편향적이라고 비난했던 동료들로부터 많은 분노를 샀기 때문에 매우 인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동료루쉰과 루마오, 주주가 공격적 행동을 바꾸라고 충고했을 때, 그는 그들의 선의의 충고를 무시했다. 224년, 비전문적 행위의 혐의로 공직에서 해임된 후 자살했다.

인생

지옌은 현재 장쑤성 쑤저우 부근에 있는 우 커미더리 출신이다. 장원의 추천으로 동우정부에 부임하여 발탁국( gentleman選國, 현급 인사 장교에 상당하는 인물)의 신사로 임명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열을 뚫고 올라선 그는 선정국(選曹尚國)의 문필명인이 되었다.[2][3]

지옌은 직설적이고 충동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남을 비판하고 폄하하는 도덕적 고지를 자처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자신을 더 좋게 보이게 하고 자신이 얼마나 비판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타인의 결점을 부각시키고 타인과 관련된 스캔들 사건 소식을 퍼뜨리는 것을 좋아했다.[4] 그의 견해로는, 행정상 무능하거나 도덕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에 많은 관료들이 직무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관료제도에 인적자원이 잘못 관리되고 있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관료주의를 개혁하기 위한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그는 모든 인사에 대해 철저한 평가를 수행하여 부패한 자와 부패한 자를 분리한 다음, 그들을 강등시키거나 그에 따라 해임시키기를 원했다. 그의 아이디어가 실행되면 전체 직원의 90% 이상이 영향을 받게 되고, '도덕성 검사'에 실패한 많은 사람들은 결국 관료사회의 최하위 직위 중 하나준리( (里)로 강등될 것이다. 그의 급진적인 생각 때문에, 지옌은 몇몇 관리들로부터 많은 분노를 샀는데, 지옌은 그가 전문가답지 못하고 편파적이라고 비난했다.[5][6]

222년에서 225년 사이, 지옌과 장웬은 황제쑨샤오를 고발했다. 선샤오가 정확히 무엇으로 기소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순사오가 면직 요청을 하자 동우황제 순취안은 그를 사면하고 황제로 계속 근무할 것을 명령했다.[7]

적어도 루쉰,[8] 루마오, 주주 등 세 명의 관리들은 따로 지옌에게 경고하고 그의 공격적인 행동을 중단하라고 충고했다.[9] 루마오는 지옌에게 과거의 잘못을 용서하고 대신 덕행과 공로를 칭찬하는 데 주력하라고 충고했다. 그는 또 지옌에게 동양의 미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시민문화를 홍보하고 강화하라고 촉구했다.[10][11] 주주는 이렇게 많은 관리들의 갑작스러운 좌천·해임이 정부 불안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고, 지옌이 공무원들의 실수에 대한 처벌을 자제하고 공직에 남아 잘못을 보상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촉구했다. 또 지연에게 정직하고 근면한 관리들을 칭찬하고 실적이 저조한 관리들을 격려해 달라고 건의했다.[12] 지옌은 그들의 선의의 충고를 모두 무시했다.[13]

지옌의 과격한 사상이 동료들로부터 발끈을 이끌어냈지만 그를 지지하는 쉬바오([a] ()가 한 명 있었다. 224년 동우황제 순취안은 비전문적 행위의 혐의를 근거로 지옌과 쉬바오를 체포하여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두 사람 모두 나중에 자살했다. 장원은 지옌을 동우정부에 추천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지옌과 쉬바오의 절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 그는 처음에 체포되어 투옥되었으나 후에 사면되어 6년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 죽었다.[15][16]

참고 항목

메모들

  1. ^ 쉬뱌오의 예명은 중유(中yu)이며, 광링 특공대 출신이다. 선정국(選選國)에서 신사를 지냈다.[14]

참조

  1. ^ a b 사마(1084), 제70권.
  2. ^ (豔字子休,亦吳郡人也,[張]溫引致之,以為選曹郎,至尚書。) Sanguozhi vol. 57.
  3. ^ (溫薦引同郡暨豔為選部尚書。) Zizhi Tongjian vol. 70.
  4. ^ (時尚書曁豔盛明臧否,差斷三署,頗揚人闇昧之失,以顯其讁。) Sanguozhi vol. 57.
  5. ^ (豔性狷厲,好為清議,見時郎署混濁淆雜,多非其人,欲臧否區別,賢愚異貫。彈射百僚,覈選三署,率皆貶高就下,降損數等,其守故者十未能一,其居位貪鄙,志節汙卑者,皆以為軍吏,置營府以處之。而怨憤之聲積,浸潤之譖行矣。) Sanguozhi vol. 57.
  6. ^ (豔好為清議,彈射百僚,覈奏三署,率皆貶高就下,降損數等,其守故者,十未能一;其居位貪鄙,志節汙卑者,皆以為軍吏,置營府以處之;多揚人闇昧之失以顯其謫。) Zizhi Tongjian vol. 70.
  7. ^ (張溫、曁豔奏其事,邵辭位請罪,權釋令復職, ...) Wu Lu annotation in Sanguozhi vol. 47.
  8. ^ (初,曁豔造營府之論,[陸]遜諫戒之,以為必禍。) Sanguozhi vol. 58.
  9. ^ (同郡陸遜、遜弟瑁及侍御史朱據皆諫止之。) Zizhi Tongjian vol. 70.
  10. ^ (瑁與書曰:「夫聖人嘉善矜愚,忘過記功,以成美化。加今王業始建,將一大統,此乃漢高棄瑕錄用之時也,若令善惡異流,貴汝潁月旦之評,誠可以厲俗明教,然恐未易行也。宜遠模仲尼之汎愛,中則郭泰之弘濟,近有益於大道也。」) Sanguozhi vol. 57.
  11. ^ (瑁與豔書曰:「夫聖人嘉善矜愚,忘過記功,以成美化。加今王業始建,將一大統,此乃漢高棄瑕錄用之時也。若令善惡異流,貴汝、潁月旦之評,誠可以厲俗明敎,然恐未易行也。宜遠模仲尼之汎愛,近則郭泰之容濟,庶有益於大道也。」) Zizhi Tongjian vol. 70.
  12. ^ (據以為天下未定,宜以功覆過,棄瑕取用,舉清厲濁,足以沮勸,若一時貶黜,懼有後咎。) Sanguozhi vol. 57.
  13. ^ (據謂豔曰:「天下未定,舉清厲濁,足以沮勸;若一時貶黜,懼有後咎。」豔皆不聽。) Zizhi Tongjian vol. 70.
  14. ^ (吳錄曰:彪字仲虞,廣陵人也。) Wu Lu annotation in Sanguozhi vol. 57.
  15. ^ (競言豔及選曹郎徐彪,專用私情,愛憎不由公理,豔、彪皆坐自殺。溫宿與豔、彪同意,數交書疏,聞問往還,即罪溫。) Sanguozhi vol. 57.
  16. ^ (於是怨憤盈路,爭言豔及選曹郎徐彪專用私情,憎愛不由公理;豔、彪皆坐自殺。溫素與豔、彪同意,亦坐斥還本郡以給廝吏,卒於家。) Zizhi Tongjian vol. 70.
  • 첸, 쇼우(3세기) 삼국지(상구지)의 기록.
  • 페이, 송지(5세기).삼국지연의》(상구지주).
  • Sima, Guang (1084). Zizhi Tongj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