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홍주
현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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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주유엔대사 | |
임기 | 1990년 4월~1991년 2월 |
신상정보 | |
출생일 | 1940년 8월 19일 |
사망일 | 2017년 5월 26일 | (76세)
학력 | 컬럼비아대학교 법학 석사 |
경력 | |
본관 | 연주 |
상훈 | 말레이시아 후작 작위 |
현홍주(玄鴻柱, 1940년 8월 19일~2017년 5월 26일)는 대한민국의 외교관, 정치인, 법조인이다. 본관은 연주(延州)이다.
생애
[편집]초기 약력
[편집]현형건(玄亨健)과 전주 김씨 김영희(金暎姬) 사이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6대조 현상록(玄商祿)부터 조부 현만운(玄晩運)에 이르기까지 5대조 현의돈(玄義敦)을 제외한 4명의 직계 선조가 모두 역과에 급제하여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조부대에는 그의 집안에 시녀가 있었다.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 법학 석사, 컬럼비아대학교 법학 석사 학위를 졸업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법조인
[편집]1978년 2월에 법무부 검찰국 겸 서울지검 검사에서 법무부 검찰국 겸 서울고검 검사로 승진하였다.[1]
정치인·외교관
[편집]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당시, 중앙정보부 대북정책국장에 재임하고 있었으며, 1979년 10월 중앙정보부 차장보를 지냈다. 1982년부터 5년간 국가안전기획부 차장을 역임하고, 그 후 법제처 처장을 거쳐 1991년 2월 19일 주미대사를 역임했다.[2] 1992년에는 말레이시아로부터 귀족 작위를 작호했다. 1993년에는 삼성의 이건희로부터 700억 상당의 뇌물도 거절했다. "700억이 아니라 700조를 줘도 정부의 방침은 곧 법이다"며 이건희를 꾸짖었다.
별세
[편집]1993년부터 2017년까지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변호사로 활동하다 2017년 별세했다. 고문변호사로 있던 중 한 상인의 사채업자 피해를 받은 내용을 무료로 변호해주기도 했으며 고결한 삶을 살았다. 참고로 당시 현홍주 고문변호사의 1회 변호비는 100억이었다. 별세 후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라 유언장에 남겼다.
학력
[편집]서훈
[편집]- 말레이시아 후작 작위
경력
[편집]- ~ 1980년 10월: 법무부 검사
- 1985년 2월~1988년 5월: 제12대 전국구 국회의원(민주정의당)
- 1988년 2월~1990년 3월: 제15대 법제처장
- 1990년 4월~1991년 2월: 주 UN 대표부 대사
- 1991년 3월~1993년 4월: 제14대 미국 대사
- 1993년: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 1994년: Pacific Forum CSIS 이사
- 1996년: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자문위원
- 1996년~2006년: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 2001년: 삼극위원회 위원
- 2009년: 통일고문회의 고문
- 2010년: 대통령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위원
가족
[편집]- 배우자: 남평 문씨
- 자녀: 현준용·현정원·현제용
역대 선거 결과
[편집]실시년도 | 선거 | 대수 | 직책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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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 총선 | 12대 | 국회의원 | 전국구 | 민주정의당 | 7,040,477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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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구 19번 | 초선 |
각주
[편집]외부 링크
[편집]전임 김성진 |
제12대 중앙정보부 제1차장 1980년 10월 29일~1981년 4월 7일 |
후임 현홍주 (국가안전기획부 제1차장) |
전임 현홍주 (중앙정보부 제1차장) |
제12대 국가안전기획부 제1차장 1981년 4월 8일~1985년 1월 19일 |
후임 김근수 |
전임 김종건 |
제12대 법제처장 1988년 2월 25일~1990년 3월 18일 |
후임 최상엽 |
전임 박동진 |
제14대 주 미국 대사 1991년 3월~1993년 4월 |
후임 한승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