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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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하(崔雲霞 , ? ~ 1950)은 일제강점기 및 대한민국의 경찰 간부이었다. 일본 고등계 형사 출신으로 대표적인 경찰 내 친일파이었다.
6.25 전쟁 발발 후 서울에서 철수하다가 한강 인도교 폭파로 순직한 것으로 추정된다.[1][2]
경력
[편집]- 1943년 12월 경무국 보안과 근무에서 사상범과 방송, 출판물 검열 등의 사무를 담당하며 친일 활동
- 1945년 해방 직전 종로경찰서 고등계 주임
- 미군정하에서 경무관으로 승진
- 1945년 10월 ~ 12월 서대문경찰서장
- 1945년 3월 용산경찰서장
- 1947년 경기도 경찰부 정보(사찰)과장, 감찰관 (경기도 경찰부장에 예속되어 관구내 경찰관의 고충을 수리하고 경찰부장이 명하는 사찰 및 조사를 하는 것이 임무)
- 1947년 수도관구경찰청(서울시) 사찰과장
- 1948년 임화 고문 치사 사건으로 구속되었으나 증거부족으로 무죄 석방
참고자료
[편집]청산하지 못한 歷史 3[4]
각주
[편집]- ↑ (14)가장 길었던 3일(14)|「6·25」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
- ↑ (1206)<제자 김태선>|<제41화> 국립 경찰 창설 (44)|김태선
- ↑ 1949년 5월 18일 최운하가 직접 체포
- ↑ 한국사연구휘보 제86호 / 최운하·친일 사찰 경찰의 총수, 오유석, 1994년, 靑年社[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