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안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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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안국(六安國)은 중국 전한의 제후왕국이다.
전한
[편집]구강군(회남나라의 내사지)의 일부였다. 원수 원년(기원전 122년), 회남왕 유안이 모반했다 죽어 회남나라가 폐지되고 그 영토를 구강군으로 되돌렸다가, 원수 2년(기원전 121년) 구강군을 분할해 육안국을 만들고 교동강왕 유기의 애첩의 아들 육안공왕 유경을 왕으로 삼았다.
육안국의 모체에는 두 설이 있는데, 《사기》 제후왕표 회남국 행에 이어 육안국이 나오는 것과, 《사기집해》에서 구강군이 또 육안국이 됐다는 데에서 구강군이라고 보는 주장이 있다. 한편 《한서》 지리지에서는 형산국이 폐지된 후 육안국이 됐다고 한다. 육안국의 속현은 모두 구강군의 동쪽에 있으므로 구강군 서쪽의 형산군에서 분할됐다는 것은 잘못으로 보인다.[1]
원시 2년(2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38,345호, 178,616명이 있었다. 아래의 속현 목록은 《한서》지리지의 내용이다.[2][3] 원연·수화 연간(기원전 8년 무렵)의 현황으로 여겨지며, 총 6현이다. 서울은 육현이다.
현명 | 한자 | 대략적 위치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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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안현 | 六安縣 | 루안시 | 옛 육나라로, 고요(皋繇)의 후예며 언성(偃姓)이다. 초나라에 멸망했다. 여계수(如溪水)가 비수(沘水)에서 갈려나와 북동으로 수춘읍에 이르러 작피로 들어간다. |
요현 | 蓼縣 | 신양시 구스 현 북 | 옛 요나라로, 고요의 후예며 언성이다. 초나라에 멸망했다. |
안풍현 | 安豊縣 | 신양시 구스 현 남동 | 《우공》의 대별산(大別山)이 남서쪽에 있다. |
안풍현 | 安風縣 | 루안시 훠추 현 남서 | |
양천현 | 陽泉縣 | 루안시 훠추 현 북서 |
다음은 육안왕국에서 갈려나온 왕자후국이다. 총 4국인데, 용향후국은 한서 지리지의 현황인 기원전 8년 이후 봉해진 후국이다.[4][5][6]
이름 | 봉해진 때 | 폐해진 때 | 왕자후표의 말격 | 지리지의 소속 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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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자(松玆) | 시원 5년(기원전 82년) 6월 신축일 | 시건국 원년(9년) | 여강군 | |
부양(富陽) | 원강 2년(기원전 64년) 병술일 | 건소 2년(기원전 37년) | ||
박향(博鄕) | 경녕 원년(기원전 33년) 4월 정묘일 | 시건국 원년(9년)? | 구강군 | |
용향(庸鄕) | 수화 3년(기원전 6년) 7월 경오일 | 시건국 원년(9년) |
부양후국은 800호밖에 되지 않으므로 폐지된 후 향으로 격하된 것으로 보인다.
신
[편집]왕국을 폐지하고 안풍군(安風郡)을 설치했으며, 다음 현의 이름을 고쳤다.
전한 | 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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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풍 | 안풍정(安風亭) |
국상
[편집]- 주산부(? ~ 기원전 7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