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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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산(金陶山, 1891년~1921년 7월 26일)은 일제 강점기 시대의 연극인으로 본명은 김진학(金鎭學)이며 아명(兒名)은 김영근(金英根)으로 서울 출신이다.[1] 한국 최초의 영화로 여겨지는 연쇄극 《의리적 구토》의 극본 및 연출을 하였다.[1][2]
상동학교(尙洞學校)를 졸업하고[1] 신극 운동을 하던 이인직에게 연극을 배운 뒤 이인직의 사설극장인 원각사에서 활약했다.[2]
1919년 극단 신극좌(新劇座)를 창설하고, 단성사(團成社)를 중심으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연쇄극(連鎖劇) 《의리적 구토(義理的仇討)》, 《의적(義賊)》 등을 공연하였다. 특히 악역(惡役)에 뛰어났다.
31세 젊은 나이에 늑막염으로 목숨을 잃었다.[1] 본격 전편 영화인 《국경》을 촬영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2]
영화인협회의 주최로 김도산의 <의리적 구토(義理的 仇討)>가 단성사에서 상영된 날(1919년 10월 27일)을 기념하여 영화의 날이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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