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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제3천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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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제3천년기(紀元前第三千年期)는 기원전 3000년부터 기원전 2001년까지 이어지는 천 년의 기간이다. 이 시기는 전세계적으로 청동기 시대 초기에서 중기에 해당되는 시기로, 중동유라시아 각지의 도시국가들은 타 지역을 침공하여 제국 건설을 꿈꾸었다. 한편 고대 이집트 문명은 고왕국에 해당되는 시대로 성장의 절정을 맞이하고 있었다. 전세계 인구는 이 시기 동안 두 배로 불어나 3000만 명에 달하게 되었다.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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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는 대략 기원전 3000년경에서 기원전 2500년경까지의 시기로 여겨진다. 기원전 제4천년기에는 이전보다 더욱 발전된 도시 문명이 출현하였고, 청동기 기술의 등장으로 농업 생산성이 증대되었으며, 문자의 발명으로 의사소통 수단이 크게 발달하였다. 기원전 제3천년기는 이들 세 요건이 지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성장을 이루어 정치기반 투쟁의 배경으로 작용하였으며, 그 결과 통치자들은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추구하였다. 이와 함께 초대형 건축물,[1] 제국주의, 절대주의 조직, 내부혁명 등이 처음으로 출현하였다.

메소포타미아수메르아카드 문명에서는 도시국가들 사이에 침공이 거듭되는 격변의 시대를 맞았으며, 계속되는 충돌로 자원과 동력, 인력은 고갈되어 갔다. 이러한 충돌의 결과는 큰 제국의 건설으로 끝을 맺었으며 각 정복자들은 그 위상을 높여갔다. 최종적으로는 아카드의 사르곤이 메소포타미아와 그 너머 지역까지를 평정하고 왕국 (아카드 제국)을 세웠다. 이로부터 1,500년 뒤 아시리아 제국이 메소포타미아를 다시 평정하기 전까지 이만한 규모의 제국이 들어선 것은 아카드 제국이 유일하였다.

한편 고왕국 시대에 접어든 이집트 문명에서는 파라오를 위한 무덤인 피라미드가 건설되었으며, 그로부터 수천년 뒤까지 인류가 만든 가장 거대한 건축물로 남았다. 또 파라오들이 자신을 평범한 인간과는 다른 본질을 지닌, 하나의 '살아있는 신'으로 일컫게 되었다. 같은 시기 아직 신석기에 머물렀던 유럽 지역에서도 거석을 건설한 지도자들이 자신만의 커다란 기념물을 남기게 되었다. 이처럼 중동과 서양 지역에서는 통치자와 건축가들이 이전에는 넘지 못한 극한에 도전하고 있었다.

천년기의 끝에 다다를 즈음에는 이집트에서 역사에 최초로 기록된 '혁명'이 벌어져 고왕국 시대를 마감하고 제1중간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또 수메르에서는 기나긴 혼란기를 지나 지역 통일을 기반으로 안정된 정치권력을 수립하면서, 상대적으로 평화롭고 조직력 있는 동시에 복잡한 기술주의 사회를 이룩하게 되었는데 이를 우르 제3왕조라 칭한다. 하지만 머지않아 아모리인이라는 외세의 영향권에 편입되었으며, 그로부터 수백년 동안 아모리인들이 수메르 일대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주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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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푸의 대피라미드
스톤 헨지

기원전 제4천년기의 사건 중에서 기원전 제3천년기의 전조가 된 것은 다음과 같다.

기원전 제3천년기의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세기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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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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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집트 문명의 대피라미드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지구라트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