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빈 김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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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빈 김씨'''(孝嬪 金氏, ? ~ [[1454년]] [[4월 2일]]([[음력]] [[2월 26일]])) 또는 '''효순궁주'''(孝順宮主)는 [[조선]] [[태종 (조선)|태종]]의 후궁이자 [[경녕군]]의 생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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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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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왕자의 난]] 당시 정안공([[태종 (조선)|태종]])의 [[말 (동물)|말]]이 정안공을 태우지 않은 채 홀로 돌아오자, 부인 민씨([[원경왕후]])는 정안공이 패배했다고 생각하여 자결하려 했지만, 김씨를 비롯한 시녀들이 민씨를 말렸다고 실록에는 전한다.<ref>《정종실록》 권3, 정종 2년(1400년) 1월 28일(갑오) 3번째 기사</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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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왕자의 난. 이방간을 토산에 추방하다'''</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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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년]] 음력 12월 13일, [[태종 (조선)|태종]]의 서장자인 [[경녕군]](敬寧君) 이비(李裶)를 낳았다.<ref name=a/> 효순궁주가 경녕군을 낳을 당시 (태종의 진술에 따르면) [[원경왕후]]와 그 형제들이 핍박해 사지로 몰아간 일이 있었는데, 훗날 태종은 원경왕후의 동생인 [[민무휼]]과 [[민무회]]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경녕군 모자(母子)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 죄'를 물어 추국했다.<ref>《태종실록》 권30, 태종 15년(1415년) 12월 21일(갑신) 1~3번째 기사</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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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 민씨가 경녕군 모자를 사지에 둔 죄를 묻는 왕지를 춘추관에 내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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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중략)</center>"{{Font color|red|'''임오년 (1402년)'''}} 여름 5월에 [[원경왕후|민씨]]의 가비(家婢)로서 본래부터 궁에 들어온 자가 임신하여 3개월이 된 뒤에 나가서 밖에서 살고 있었는데, 민씨가 행랑방에 두고 그 계집종 삼덕(三德)과 함께 있게 하였다. {{Font color|red|'''그 해 12월에 이르러'''}} 산삭(産朔)이 되어 이 달 {{Font color|red|'''13일'''}} 아침에 태동(胎動)하여 배가 아프기 시작하였다. 삼덕이 민씨에게 고하자, 민씨가 문바깥 다듬잇돌 옆에 내다 두게 하였으니, 죽게 하고자 한 것이다.<center>(중략)</center>{{Font color|2=pink|3='''진시'''(辰時)'''에 아들을 낳았는데 지금의 원윤'''(元尹) '''[[경녕군|이비]]'''(李裶)'''이다'''}}<center>(중략)</center></ref> 효순궁주가 경녕군을 낳을 당시, [[원경왕후]]와 그 형제들이 핍박하여 사지로 몰은 일이 있었는데, 훗날 태종은 원경왕후의 동생인 [[민무휼]]과 [[민무회]]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경녕군 모자(母子)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 죄'를 물어 추국하였다.<ref>《[[태종실록]]》 30권, 태종 15년(1415년 명 영락(永樂) 13년) 12월 21일 (갑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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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금부에 명하여 민무휼·민무회를 국문하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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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금부에 명하여 [[민무휼]]·[[민무회]]를 국문하게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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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전에 나아가 우사간(右司諫) 조계생(趙啓生)·집의(執義) 정초(鄭招)·의금부 제조(義禁府提調) 이천우(李天祐)·박은(朴訔)·허조(許稠)를 불러, 민무회·민무휼이 원윤 [[경녕군|이비]](李裶)의 모자를 죽이고자 한 죄와 세자에게 불경한 죄를 자세히 말하고, 그 연유를 국문하여 밝게 죄안에 쓰게 하였다.</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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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상에는 품계를 받은 기록 없이 단지 경녕군의 생모 '김씨'라고만 기록되어 있으나, 1872년(고종 9년), 정1품 '''효빈'''(孝嬪)으로 추증되었다.<ref>《승정원일기》 2783책, 고종 9년(1872년) 12월 1일(신해) 23번째 기사</ref>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 기슭에 묻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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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한 경녕군의 어미 김씨에게 쌀·콩·종이·정포·관곽을 내려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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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戶曹)에 전지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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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녕군]](敬寧君)의 어미 김씨(金氏)가 졸(卒)하였으니, 부의(賻儀)로 쌀·콩 아울러 20석과 종이 80권, 정포(正布) 20필과 관곽(棺槨)을 내려 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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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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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고종 9년), 정1품 '''효빈'''(孝嬪)으로 추증되었다.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 기슭에 묻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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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관계 == |
== 가족 관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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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 : [[조선 |
* 남편 : [[태종 (조선)|태종]](太宗, 1367~1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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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 : [[경녕군]] 비(敬寧君 裶, |
** 아들 : [[경녕군]] 비(敬寧君 裶, 1394년12월13일~1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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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느리 : |
** 며느리 : 청원부부인 [[청풍 김씨]](淸原府夫人 淸風 金氏, 생몰년 미상)<ref>참의 증 찬성 김관(參議 贈 贊成 金灌)의 딸.</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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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 : 고양군 질(高陽君 秩, |
*** 손자 : 고양군 질(高陽君 秩, ?~1449년3월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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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 : 은천군 찬(銀川君, 1421 |
*** 손자 : 은천군 찬(銀川君 穳, 1421~14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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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 : 오성군 치(梧城君, 생몰년 미상) |
*** 손자 : 오성군 치(梧城君, 생몰년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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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 : 영선도정 리(永善都正 利, 생몰년 미상) |
*** 손자 : 영선도정 리(永善都正 利, 생몰년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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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 : 모양군 직(牟陽君 稷, 1438 |
*** 손자 : 모양군 직(牟陽君 稷, 1438~1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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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느리 : [[군부인]] [[전주 최씨]](郡夫人 全州 崔氏, 생몰년 미상) |
** 며느리 : [[군부인]] [[전주 최씨]](郡夫人 全州 崔氏, 생몰년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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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 : 단산도정 수(丹山都正 穗, 1444 |
*** 손자 : 단산도정 수(丹山都正 穗, 1444~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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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빈 김씨가 등장하는작품 == |
== 효빈 김씨가 등장하는작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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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 |
=== 드라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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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의 눈물]]》([[한국방송공사|KBS]], 1996, 배우:[[김혜리 (배우)|김혜리]]) |
* 《[[용의 눈물]]》([[한국방송공사|KBS]], 1996~1997, 배우:[[김혜리 (배우)|김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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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왕 세종]]》([[한국방송공사|KBS]], 2008, 배우:[[김성령]]) |
* 《[[대왕 세종]]》([[한국방송공사|KBS]], 2008, 배우:[[김성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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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종 이방원 (드라마)|태종 이방원]]》([[한국방송공사|KBS]], 2021~2022, 배우:[[이주은 (배우)|이주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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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경 (드라마)|원경]]》([[tvN]], 2025, 배우:[[이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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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 |
== 참고 자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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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PPL_6JOa_A9999_2_0019476|효빈 김씨}}</sm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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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 |
== 각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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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생년 미상]] |
[[분류:생년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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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45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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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조선의 후궁]] |
[[분류:조선의 후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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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조선 태종]] |
[[분류:조선 태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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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4세기 한국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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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5세기 한국 사람]] |
2025년 1월 9일 (목) 10:58 기준 최신판
효빈 김씨
孝嬪 金氏 | |
---|---|
조선 태종의 후궁 | |
이름 | |
별호 | 효순궁주(孝順宮主) |
신상정보 | |
출생일 | 미상 |
사망일 | 1454년 4월 2일 (양력) |
배우자 | 태종 |
자녀 | 1남
경녕군 |
효빈 김씨(孝嬪 金氏, ? ~ 1454년 4월 2일(음력 2월 26일)) 또는 효순궁주(孝順宮主)는 조선 태종의 후궁이자 경녕군의 생모이다.
생애
[편집]태종의 진술에 따르면 효빈 김씨는 원경왕후의 가비(家婢)이며, 오빠로는 화상(和尙)이 있다.[1]
제2차 왕자의 난 당시 정안공(태종)의 말이 정안공을 태우지 않은 채 홀로 돌아오자, 부인 민씨(원경왕후)는 정안공이 패배했다고 생각하여 자결하려 했지만, 김씨를 비롯한 시녀들이 민씨를 말렸다고 실록에는 전한다.[2]
1402년 음력 12월 13일, 태종의 서장자인 경녕군(敬寧君) 이비(李裶)를 낳았다.[1] 효순궁주가 경녕군을 낳을 당시 (태종의 진술에 따르면) 원경왕후와 그 형제들이 핍박해 사지로 몰아간 일이 있었는데, 훗날 태종은 원경왕후의 동생인 민무휼과 민무회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경녕군 모자(母子)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 죄'를 물어 추국했다.[3]
1454년(단종 2년) 음력 2월 26일에 사망하니 단종이 쌀, 콩, 곡식 20석, 종이 80권, 정포 20필, 관 등을 부조했다.[4]
조선왕조실록 상에는 품계를 받은 기록 없이 단지 경녕군의 생모 '김씨'라고만 기록되어 있으나, 1872년(고종 9년), 정1품 효빈(孝嬪)으로 추증되었다.[5]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 기슭에 묻혔다.
가족 관계
[편집]- 남편 : 태종(太宗, 1367~1422)
- 아들 : 경녕군 비(敬寧君 裶, 1394년12월13일~1458)
- 며느리 : 청원부부인 청풍 김씨(淸原府夫人 淸風 金氏, 생몰년 미상)[6]
- 손자 : 고양군 질(高陽君 秩, ?~1449년3월13일)
- 손자 : 은천군 찬(銀川君 穳, 1421~1481)
- 손자 : 오성군 치(梧城君, 생몰년 미상)
- 손자 : 영선도정 리(永善都正 利, 생몰년 미상)
- 며느리 : 군부인 개성부 마씨(郡夫人 開城府 馬氏, 생몰년 미상)
- 손자 : 모양군 직(牟陽君 稷, 1438~1511)
- 며느리 : 군부인 전주 최씨(郡夫人 全州 崔氏, 생몰년 미상)
- 손자 : 단산도정 수(丹山都正 穗, 1444~미상)
효빈 김씨가 등장하는작품
[편집]드라마
[편집]- 《용의 눈물》(KBS, 1996~1997, 배우:김혜리)
- 《대왕 세종》(KBS, 2008, 배우:김성령)
- 《태종 이방원》(KBS, 2021~2022, 배우:이주은)
- 《원경》(tvN, 2025, 배우:이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