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총리, 대통령 권한 어디까지 승계받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14일 오후 7시 24분부터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기 시작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현직 대통령 탄핵소추에 따른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는 2004년 노무현 정부와 2016년 박근혜 정부 이후 세 번째다.
한 권한대행은 누구이고, 대통령을 대신해 어떤 역할까지 수행하게 되는지 정리했다.
'정파 초월해' 등용됐던 최장수 총리
한 권한대행은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오랜 기간(3년 5개월) 총리직을 수행해 온 '최장수 총리'다. 전북 전주 출신으로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수석 졸업한 그는 경제 전문가로 꼽힌다.
1970년 행정고시 8회로 공직 사회로 입문한 한 권한대행은 김대중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내며 외교와 경제 분야에서 활약했다.
그는 정파를 뛰어넘으며 등용된 인물이기도 하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특허청장과 통상산업부 차관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다.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는 2007년 약 11개월 동안 노 전 대통령 정권의 마지막 국무총리로 재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주미 대사로 활동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한국무역협회 회장을 맡았다. 이후 윤석열 정부에서는 초대 총리로 임명됐다.
그는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인생철학이 '우문현답'이라고 답했다.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하게 답한다는 사자성어 우문현답이 아닌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 역할 모두 소화하나?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군통수권, 외교권, 조약 체결 및 비준권, 사면·감형·복권에 대한 권리, 법률안 재의 요구권과 공포권, 공무원 임면권, 헌법기관 구성권 등 대통령 권한 전반을 승계한다.
이에 따라 대통령실 역시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로 업무 보고 방식을 전환했다.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 심판이 최장 180일 걸리는 것을 염두에 두면 그의 대행 체제도 비슷한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15일 오전, 권한대행 체제 2일 차를 맞은 한 권한대행은 정부서울청사 집무실로 출근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16분간 통화하는 등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권한대행이지만 한 총리가 용산 대통령실에서 근무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정부서울청사나 정부세종청사 집무실에서 근무하고 업무보좌도 총리실의 업무 보좌를 받고 있다.
한 총리는 14일 밤 권한대행으로 첫 대국민 담화를 내놓고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정에 있어서 한 치의 공백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먼저 자세를 낮추고 국회와 긴밀히 소통하고 협조를 얻겠다"며 "안정된 국정운영이 제 긴 공직 생활의 마지막 소임"이라고 강조했다.
탄핵 리스크 속 한계점도 있어
한 권한대행이 정상급 외교 활동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동안의 전례를 살펴보면 현실적으로는 한계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국정 혼란 속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직은 최소한의 역할 유지만 해 온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4년 4월 당시 고건 권한대행은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딕 체니 미국 부통령과 정상외교가 아닌 준 정상외교를 했고, 2017년 1월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황교안 권한대행은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30분간 첫 전화 통화를 했지만, 정상회담 논의로 이어지진 못했다.
한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수행 가능성 유무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관측만 있지는 않다. 야당 민주당이 한 총리에 대해서도 내란죄 공범 또는 방조자로서 탄핵할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한 총리에 대해 "일단 탄핵 절차를 밟지 않겠다"고 밝혀 한 총리 권한대행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 대표는 이와 관련해 "당내에 한덕수 대통령 직무대행에 대해 내란 사태의 책임, 국정 난맥의 책임을 물어서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너무 많은 탄핵을 하게 되면 국정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일단 탄핵 절차는 밟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편, 한 권한대행이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할지도 관심이 쏠린다. 김건희 여사나 내란 관련 특별검사법안을 비롯해 헌법재판관 임명 등에 대해서도 한 권한대행이 거부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고건 전 국무총리의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기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사면법 개정안' 등에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있다.
다만 이재명 대표가 이날 한덕수 총리가 권한대행으로 재의요구권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못을 박아서 한 총리 입장에서는 재의요구권 사용에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는 없게 됐다.
이 대표는 "직무대행은 교과서적으로 보면 현상 유지 관리가 주 업무이고 현상을 변경하거나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게 원칙"이라며 "대행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물론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가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야당이 탄핵 카드를 내려놨다고 하더라도 경찰이 내란죄 혐의로 고발된 한 권한대행을 피의자로 입건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 총리 외에도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장관 9명,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조태용 국정원장 등에 대해서도 경찰이 소환을 통보한 상태다.
이에 따라 국무위원들이 줄줄이 소환되면서 국정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