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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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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표어자유·정의·진리
라틴어: Libertas, Justitia, Veritas[1]
종류사립[2]
설립1905년
총장김병철
부총장남상구(교무)[3], 윤영섭(대외)[4],
김문석(세종)[5], 손창성(의무)[6]
학교법인고려중앙학원
학부생 수20,011명 (2010, 안암)[2]
대학원생 수5,012명 (2010, 일반대학원)[7]
교직원 수교수: 3,798명 (2010, 안암)[8]
직원: 389명 (2010, 안암)[9]
국가대한민국 대한민국
위치서울 성북구
충청남도 연기군
규모2캠퍼스, 22대학, 20대학원
상징물상징동물: 호랑이[10]
교색: 크림슨(Crimson)[11]
교목: 잣나무[10]
교화: 철쭉
웹사이트http://www.korea.ac.kr/
Map 고려대학교의 위치
본관

고려대학교(高麗大學校, Korea University)는 대한민국사립 종합대학이다.[2] 대한제국 광무 9년인 1905년이용익 등에 의해 한국 최초의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인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로 개교[12]한 이후 1946년 4년제 대학으로 승격되어 고려대학교로 개칭, 종합대학교로 재출범하였다.[13] 1952년 12월에는 문과대학을 문리과대학으로 개편[14]하고 1971년에는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을 흡수 및 합병하여 이공·인문·의예·예체능 관련학과를 고루 갖추게 되었다.[12][15] 고려대학교는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1960년 4·19 혁명의 촉매제가 된 4·18 피습 사건[16][17]을 비롯한 각종 시위의 중심에 서기도 하였다. 1975년 4월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공포된 긴급조치 제7호는 고려대학교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18][19][20]

상징동물은 호랑이[10], 교색(校色)은 크림슨[11], 교목(校木)은 잣나무[10], 교화(校花)는 철쭉이며, 교훈(校訓)은 자유·정의·진리(라틴어: Libertas, Justitia, Veritas)이다.[1] 약칭으로 '고대'라고 부르거나, 영문 약칭으로 'KU'로 부르기도 한다.[21]

연혁

대한제국 시대 및 일제 강점기

1905년 5월 5일 세워져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으로 기록[22]되어 있는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가 고려대학교의 모태이다. 보성(普成)이라는 이름은, 대한제국 광무 9년인 1905년에 대장원경, 즉 황실의 재정을 담당하는 대신인 이용익(李容翊)이 고종황제의 재정적 후원과 '보성(普成)'이라는 교명(校名)과 황실문장인 '이화문(梨花紋)'을 교표(校表)로 하사받은 데 그 기원을 둔다.[23] 하지만 시작 과정 자체가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을사늑약 이후 이용익의 망명과 별세로 경영난에 빠진 학교를 1910년 12월 의암 손병희(孫秉熙) 선생이 도주로 있는 천도교에서 인수하였으나 손병희 선생이 3·1 운동 직후 피검되는 등 난관에 봉착하는 일이 잦았다.[12][24] 이후 1932년 3월 재정난에 빠진 학교를 인촌 김성수 주도로 재단법인 중앙학원이 인수하게 되었다.[23][25] 현재 학교가 위치한 안암동으로의 이전은 1934년 9월에 이루어졌다.[12] 인문사회계지역의 중앙에 위치한 본관1933년 9월 착공하여 1934년 9월 준공되었으며[23], 1937년에는 보성전문학교 창립 30주년 기념사업으로 도서관을 준공 및 개관하였다. 현재 본관과 중앙도서관 구관은 각각 사적 제285호와 제286호로 지정되어 있다.[26][27]

광복 이후

종합대학으로의 승격과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의 흡수·합병

1946년에는 '보성전문학교'가 '고려대학교'로 개칭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종합대학으로의 설립이 인가되었다. 대학으로의 공식적인 승격은 9월에 이루어졌다.[13]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본교는 애기능 인근 부지를 매입하였으며[24] 이는 후일 이 곳에 이공계캠퍼스가 자리잡는 기반이 된다. 1971년 12월에는 1970년에 시작된 장기발전계획에 따라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을 흡수 및 합병하였다.[12][15]

4·18 피습사건은 4·19 혁명 발발의 도화선이 되었다.
반복적인 시위와 잦은 휴교 사태

1960년 4월 11일 3·15 부정선거와 관련된 마산 시위에서 실종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것과 관련하여[17][28] 5개 단과대학 운영위원장들의 주도로 수많은 학생들이 '마산사건의 책임자를 즉시 처단'할 것을 요구하면서 장외시위를 벌였으나[16], 돌아오는 길에 유지광 등이 이끄는 정치깡패들에게 무자비한 습격을 당하여[29][30]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매년 4월 18일에는 4·18 의거로 기록되는, 독재정권에 맞선 선배들의 정의로운 행동을 계승하기 위해 '4·18 구국대장정' 행사가 열린다.[31] 구국대장정 행사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보려면 연례 행사 단락을 참조하도록 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휴교 사태가 빈발한 시기이기도 하다. 1965년 9월 4일에는 한일협정 반대시위 사태로 무기한 휴업 명령을 받았으며[32][33], 1971년 10월 15일에는 27일간의 강제 휴교 조치를 동반한 교내 군 투입 및 위수령 조치가 단행되기도 하였다.[34][35] 1975년 4월에는 유신헌법 철폐를 주장하는 시위와 관련하여 고려대학교만을 대상으로 한 긴급조치 제7호가 발동되기도 하였다.[18][19][36] 제5공화국이 들어선 이후에도 독재정권을 향한 학생들의 시위는 계속되었다.

교육시설의 확충

창립 30주년 기념사업으로 중앙도서관 구관이 1935년 착공[24]하여 1937년에 개관한 데 이어, 1975년에는 창립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중앙도서관 신관을 신축하여 1978년 3월에 개관하였다.[12][37][38] 1973년 10월 서독정부의 무상원조에 의해 농과대학 캠퍼스가 준공되어 1977년부터 활용되기 시작되는 한편 1978년 5월 착공한 기숙사가 1979년 11월에 준공되어 1980년 3월에 개관하였다. 한편 당국의 수도권 인구분산 정책에 따라 1980년 1월에 8개 학과, 초기 정원 400명 규모의 조치원 분교의 설립이 인가되었는데 이것이 현재의 세종캠퍼스가 탄생하는 밑거름이 되었다.[12]

2000년대 이후

졸업요건의 변화

2000년대에 들어서 Global KU 프로젝트 등의 영향으로 졸업요건이 대폭 강화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2000년 3월 신입생부터는 TOEIC 700점 수준 이상의 점수를 획득하여야 졸업이 가능해지게 되었으며[39][40][41], 2004년 3월 신입생부터는 한자 2급 수준의 졸업요건이 신설되었으나[39][42] 2011년 들어 일부 학과들이 이 요건을 폐지하였다.[43] 또한 2004년 3월 신입생부터는 심화전공이나 이중전공, 연계전공으로 세분화할 수 있는 제2전공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44]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

2005년은 고려대학교가 개교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으며 5월 5일에는 개교 100주년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과 관련하여 2003년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출범하는 등 교내에서 다양한 기념사업들이 추진되었다.[45][46] 한편 고려중앙학원에서는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중앙광장과 백주년기념관, 화정체육관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으며, 이 중 중앙광장이 2002년 3월에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47][48]

위상 및 논란

외부 평가

어윤대 총장의 재임기간 동안 본교는 2005년 영국 더 타임즈 지가 발표한 '2005년' 세계 200대 대학'에서 184위에[49], 이듬해인 2006년 10월에는 같은 기관에 의해 이루어진 평가에서는 종합 150위에 오르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기록하였다.[50][51] 하지만 2006년의 평가 결과에 대해서는 학교 측이 비전임 교원 수까지 포함된 수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교원 수를 부풀렸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였다.[52] 한편, 고려대 경영대는 2009년 경영대학 평가 전문기관인 에듀니버설이 전 세계 경영대 학장 100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추천하고 싶은 대학’ 국내 1위에 올랐으며[53], 2010년 한국 경영대 평가 설문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54] MBA교육과학기술부BK21 평가에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하였다.[55] 국내 경영대학 가운데 AACSBEQUIS 두 곳의 인증을 모두 받은 곳은 고려대가 유일하다.[56] 2011년에 신규 임용된 42기 사법연수생 가운데 고려대 출신자는 189명으로 서울대 다음으로 많았다.[57] 2009년에 치러진 51회 사법시험에서는 고려대 법대에서 155명의 합격자를 내 가장 많은 합격자를 내기도 하였다.[58]

학교를 둘러싼 여러 가지 논란

  • 이건희 삼성 회장 명예철학박사 학위수여식 사태 : 2005년 5월 2일에는 학교 당국의 삼성 이건희 회장 명예박사 학위수여식이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문과대 학생회와 '다함께' 고대모임 중심으로 한 60여명의 학생들이 당일 오후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진행하는 등 이 회장의 박사 학위 수여를 반대하였으며[50][59] 물리적인 충돌로 인해 수여식은 예정과 달리 본관 2층에서 치러졌다.[60]
  • 병설 보건대학 폐지와 출교 사태 : 2006년 3월에 폐지된 병설 보건대학 학생들의 총학생회 선거권을 인정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학생들과 학교 측 간에 상당한 의견 대립이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이 교수들을 본관에 감금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학교 측은 4월 19일 담화문과 징계결정 공지를 통해 참가 학생 중 7명을 출교(黜校)조치하는 등의 징계를 내렸다.[50][61] 출교된 7명의 학생들은 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장기간 본관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였으며[50], 이와는 별도로 출교생들과 학교 측 간에 장기간의 법적 분쟁이 빚어지기도 하였다.
  • 신입생 선발 과정을 둘러싼 논란 : 신입생을 선발하는 전형 방식을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이 존재하였다. 2008학년도 수시전형에서는 학교 당국이 지원자의 출신 학교별로 동등하지 않은 내신 점수를 부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며[62], 2009학년도 수시전형에서는 선발 과정에 부정 의혹이 제기되어 소송 사태가 빚어지기도 하였다.[63] 2010년 대학입시에서는 고려대학교를 비롯한 5개 대학이 입학사정관제와 관련된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침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하였다.[64][65][66][67]

개설 학과·전공

학부와 대학원 과정이 모두 개설되어 있으며, 2011년 현재 개설되어 있는 과정은 현재 다음과 같다.

학부 과정

2011년 현재 안암캠퍼스에는 16개 단과대학이, 세종캠퍼스에는 6개 단과대학이 설치되어 있다. 2009학년도부터 기존 의예과의 정원 중 절반을 의학전문대학원의 정원으로 전환하여 임시로 운영하고 있다.[68][69] 같은 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개원함에 따라 법과대학에서는 신입생을 받지 않고 있으며, 대신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하여 기존의 법학과 신입생 정원을 대체하고 있다. 일부 학과에서는 학부제로 모집을 하며 학부제로 입학한 학생의 경우 2학년 진급시 자신의 전공을 배정받는데, 전공을 배정하는 기준은 단과대학 사정에 따라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70] 학부과정에서는 2004년 입학생부터 심화전공, 이중전공, 연계전공으로 세분화할 수 있는 제2전공의 이수가 의무화되어 있다.[44]

  • 연계전공 : 복수의 학과·학부가 협력하여 개설한 연계전공2004년에 처음 도입되었다.[71] 2004학번부터 이수가 의무화[44]된 제2전공의 하나로 선택할 수 있다. 다음 페이지를 통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학원 과정

일반대학원과 전문대학원, 특수대학원으로 구분되어 있다. 의학전문대학원의 경우 전문대학원 53명을 의학과 53명과 병행하여 임시로 운영하고 있으며 2015년에 폐지될 예정이다.[69] 2009년 개원한 법학전문대학원은 120명을 배정받았다.[73]

교육방침상의 특징

파일:KU5.jpg.jpg
LG-POSCO관 로비

국제교류

국제처에서는 국제교류의 갈래로 SEP(Student Exchange Program)와 VSP(Visiting Student Program)의 두 종류를 운영하고 있다. SEP(Student Exchange Program)는 본교와 학술교류협정이 체결된 외국 대학과 학부 또는 대학원생을 교환하는 프로그램이다. 본교는 해당 학교가 요구하는 자격을 갖춘 자를 교환학생으로 추천하며, 추천된 교환학생에 대한 입학 허가 여부는 해당 학교에서 결정한다. 자비유학과 방문학생과 달리 본교에만 등록금을 납부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SEP와는 별도로 VSP(Visiting Student Program) 또한 국제교류의 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소수의 학교와 별도의 협정을 체결하여 본교의 학생들을 대규모로 파견하는 것이 VSP 프로그램의 요지이다. 캐나다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UBC), 영국로얄할러웨이대학교(Royal Holloway University of London: RHUL), 호주그리피스대학교(Griffith University), 미국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UC Davis)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UPenn) 등이 그 대상이다.[74] 등록금은 파견교와 본교에 모두 납부하는 것이 원칙이나, 이 가운데 본교에 납부한 등록금의 대부분은 장학금의 형태로 반환된다.[75]

Global KU 프로젝트와 한자졸업요건

  • Global KU 프로젝트 : 2010년까지 세계 100대 대학에 진입하는 것을 우선의 목표로 한 것으로, 제15대 어윤대 총장의 주도하에 2003년부터 본격 실시되었다.[76] 장기적으로 영어강의 확충[77], 해외대학과의 교류 증진[78], 외국인 교수 채용 확대 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졸업요건으로 요구하는 토익 점수를 대폭 상승시키고, 2005년 5월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대학총장포럼을 개최[79]하는 등 단기적인 계획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현재 일정 수준 이상의 공인영어 성적을 취득해야 졸업이 가능한 상태다.[41] 한편, Global KU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교내에 도입된 영어강의와 관련해서 학교 측에서는 각 단과대의 특성을 고려해 앞으로 영어강의와 관련된 졸업 요건을 단과대별로 완화하거나 강화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80] 현재 영어강의 5개 이상을 수강하여야 졸업이 가능하다.[81]
  • 한자졸업요건 : 학부과정에서는 국가 공인 혹은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인증 한자 2급 획득 또한 의무화되어 있었으나, 법과대학을 시작으로 한자졸업요건은 단과대 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방침이 변경되었다. 한자인증을 가장 먼저 폐지한 법과대학과 정보통신대학은 '한자인증의 사회적 필요성이 높지 않으며, 이에 학생들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설명과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한자인증의 폐지 이유로 각각 제시하였다.[43]

제2전공의 의무화

제1전공의 심화전공 또는 제2전공의 의무화

2004학년도 학부 입학생부터 적용된 졸업요구조건의 하나이다. 2004학번 이후의 학부생들은 제1전공과 함께 심화전공이나 이중전공, 연계전공으로 분류되는 제2전공 중 하나를 선택해서 이수해야만 졸업할 수 있다.[44] 당초 학교에서는 학생설계전공도 제2전공의 한 갈래로 운영할 계획이였으나, 제반 여건 상의 문제로 현재는 운영되지 않고 있다.[82] 일부 학과에서는 학부제로 모집을 하며 학부제로 입학한 학생의 경우 2학년 진급시 자신의 전공을 배정받는다.[70] 졸업학점을 모두 이수함과 동시에 영어강의, 졸업논문이나 공인영어성적, 한자인증과 같이 자신이 이수하고 있는 전공에서 부가적으로 요구하는 졸업요구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학생에 관하여 졸업이 가능하다.[83] 영어강의의 경우 대개 5과목 이상 수강이 졸업요건으로 지정되어 있지만[84][85] 경영대학과 같이 이와 상이하게 요건을 정하고 있는 학과 또한 존재하므로 자신의 학과가 지정한 요건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86] 또한 학번별로 졸업요건이 상이할 수가 있으므로 자신에게 해당되는 졸업요건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87] 졸업요구학점을 모두 이수하였으나 기타 졸업요구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수료상태로 남게 된다.[88] 현재 전과제도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89]

  • 제1전공의 심화전공(advanced major) : 제1전공 학과에서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전공 과목 학점 이외에 각 학과에서 정한 심화전공 학점만큼을 더 이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심화전공을 이수하고 있는 학생이 졸업요구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이수해야 하는 학점은 각 학과의 내규에 의한다. 대개 기본전공 42학점과 심화전공 30학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89][90] 이보다 더 낮게 설정되어 있는 학과도 존재하며[91], 그 반대의 경우 또한 존재한다.[92]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제1전공 학과에서 기본전공 42학점과 심화전공 30학점을 심화전공 이수요건으로 지정하고 있다면, 그에 해당하는 학점을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심화전공으로 졸업하면 졸업장에 심화전공 사실이 기재된다.
  • 이중전공(double major) : 제2전공의 하나로 1997년에 처음 도입되었다.[93] 제1전공을 이수하면서 타 학과의 전공을 동시에 이수하여 졸업시 2개의 학사(學士)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제도이다. 제1전공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학부, 그리고 법과대학, 의과대학, 간호대학의 학과로는 이중전공을 신청할 수 없으며, 사범대학의 경우 사범대학 입학자에 한하여 지원할 수 있다. 사범대학을 제외한 각 학과의 경우 기준 정원의 130%에서 심화전공 이수자를 뺀 인원만큼이 모집 정원이며 이 중의 80%를 1학기 때 선발한다. 불합격시 합격할 때까지 지원할 수 있지만 이미 합격한 이중전공을 포기할 경우 재지원 기회는 1번으로 제한된다.[94] 이중전공 신청 이전에 이수한 이중전공 해당 과목은 이중전공의 이수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졸업요건은 제2전공을 이수하는 학과의 내규에 의하는데, 이중전공으로 졸업할 경우 동일한 졸업장에 제1전공과 이중전공이 함께 표기되며, 이 때 학위번호는 1개이다. 증명발급은 제1전공과 이중전공에 관한 내용이 한 장에 이루어진다.[95]
  • 연계전공(relation major) : 2개 이상의 학부·학과가 연계하여 별도의 교육과정을 편성, 설치하는 전공이다. 제2전공의 하나로 2개 이상의 학문분야를 융합해 학생들에게 보다 폭넓은 학문경험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2004년에 처음 도입되었다.[71] 연계전공으로 졸업하면 제1전공과 동일한 졸업장에 연계전공 사실이 기재된다. 연계전공 독립 과목이 많지 않아 아직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평이 존재한다.[96]
  • 학생설계전공 : 제2전공의 하나이나 아직까지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한다. 아직 학교 측이 구체적으로 이 이수 방법을 제도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학생들이 선택할 수 없는 상태이다.[82]
부전공과 복수전공

2004학번부터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제2전공 정책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학교에서 흔히 말하는 '복수전공' 또는 이 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2전공'과는 다른 제도이다.

  • 부전공(minor) : 제1전공을 이수하는 동시에 다른 학과의 전체 전공 이수학점의 일부를 이수, 동일한 졸업장에 부전공(minor) 사실을 기재하는 것이다. 제1전공과 유사한 학과 및 법학과로는 신청할 수 없으며, 사범대학 입학자에 한하여 사범대학의 학과를 부전공으로 이수할 수 있다. 2004학번을 기준으로 이수요건에 다소간에 차이가 있다.[97]
  • 복수전공(dual degree) : 복수전공은 기본전공 이수 후 졸업을 유보하고, 또 하나의 전공을 연속해서 이수하여 2개의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제도로, 제2전공의 일부가 아니다. 제1전공의 이수가 끝난 후 2학기 또는 3학기를 추가로 이수해야 복수전공 학위 취득이 가능하며, 이 점에서 제1전공과 동시에 이수하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이중전공과 차이를 보인다. 이중전공과 마찬가지로 졸업증서에 제1전공과 복수전공이 1개의 학위로 표기되어서 나오지만, 증명발급은 제1전공과 별도로 이루어진다. 제1전공을 이수하면서 복수전공에 해당하는 과목을 부전공의 형태로 이수하였을 경우, 복수전공 진입 후 21학점까지 인정받을 수 있다. 이 때 부전공의 효력은 상실된다.[97]

캠퍼스 및 본교 소유 시설

서관 시계탑

안암캠퍼스(安岩-)는 인문사회계지역, 자연계지역, 녹지지역, 보건과학대학 캠퍼스를 포함한다. 전체적으로 건물 양식이 일관된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어윤대 총장이 재임하던 시기에 3500억원의 발전 기금을 유치하고 기업체의 후원을 받아내 교내 전체 건물의 40%가량을 신축 및 리모델링함에 따라 전체적으로 건물 양식이 일관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98][99] 중앙광장과 하나스퀘어가 각각 인문사회계지역과 자연계지역에 위치하여 각 지역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충청남도 연기군에 위치한 세종캠퍼스(世宗-)의 건물들 또한 웅장한 분위기의 건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본교 홈페이지에서는 안암캠퍼스세종캠퍼스의 캠퍼스 지도를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인문사회계지역

중앙광장과 본관이 위치한 지역으로, 본관~중앙광장~정문을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주 1] 본관과 대학원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구 중앙도서관 건물은 각각 사적 제285호와 제286호로 지정되어 있다. 구역별로 본관과 중앙광장 주변, 중앙도서관 주변, 민주광장 주변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으나, 여기서는 인문사회계지역의 중심축을 이루는 본관과 그 주변 건물들에 대해서만 살펴보도록 한다.

중심축
  • 정문 : 최초의 교문은 교우들의 성금으로 건립되었으며, 교우회 측에서는 1965년 10월 11일 정문 앞에서 교문 헌정식을 열었다.[101] 1995년에는 현재와 같은 보다 더 큰 교문이 세워졌으며, 기존의 교문은 서창캠퍼스로 이전되었다.[102]

民族(민족)의 힘으로 民族(민족)의 꿈을 가꾸어 온
民族(민족)의 보람찬 大學(대학)이 있어
너 恒常(항상) 여기에 自由(자유)의 불을 밝히고
正義(정의)의 길을 달리고 眞理(진리)의 샘을 지키느니
地軸(지축)을 박차고 咆哮(포효)하거라
너 불타는 野望(야망) 젊은 意慾(의욕)의 象徵(상징)아
宇宙(우주)를 향한 너의 부르짖음이
民族(민족)의 소리되어 메아리치는 곳에
너의 氣槪(기개) 너의 志操(지조) 너의 叡智(예지)는
祖國(조국)의 永遠(영원)한 鼓動(고동)이 되리라

조지훈, 虎像碑文(호상비문)[103]
  • 본관 : 인문사회계지역의 중심에는 6층 높이의 본관이 자리하고 있다. 중앙광장과 더불어 캠퍼스의 중앙에 위치한 본관은 인촌 김성수 선생1932년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했을 때 지어진 건물로, 1933년 9월에 착공하여 1934년 9월에 완공되었다. 다른 대학 캠퍼스의 근대 건축물은 대부분 외국인에 의해 설계된 데 반해, 이 건물의 설계는 한국인 건축가 박동진 선생이 맡았다. 그는 본관 이외에도 도서관과 서관, 강당, 제2공학관 등 교내의 여러 건물을 설계하였다.[104] 본관 건물은 '배울 학(學)' 자를, 건물 앞에 위치한 정원은 '큰 대(大)' 자를 형상화하고 있다.[22] 고딕 양식의 이 건물은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5호로 지정되었다.[105] 본관 양옆으로 오른편에는 고대의 기개를 표현한 호상(虎像)이, 왼편에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4·18을 기념하는 4·18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4·18 기념비의 비문은 조지훈 선생이 지은 것이다.[106] 호상의 바닥에는 조지훈의 호상비문(虎像碑文)이 새겨져 있다.[107]
  • 중앙광장 : 본관과 더불어 인문사회계지역의 중앙에 자리한 중앙광장은 고려대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2000년 6월에 착공[108]하여 2002년 3월에 완공되었다. 지상에는 5780평의 녹지공간과 잔디광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지하 1층에는 행정부서와 열람실 및 편의시설이, 지하 2층과 3층에는 10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중앙광장이 건설되기 이전에는 대운동장이 자리하고 있었다.[109][110][주 2]
중앙도서관과 서관(西館)
  • 중앙도서관 구관과 신관 : 중앙도서관 구관은 본관을 중심으로 중앙광장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성전문학교 창립 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1935년 착공[24]하여 1937년에 개관하였다.[25] 이 건물은 사적 제286호로 지정되어 있다.[26][27] 1975년에는 개교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중앙도서관 신관을 신축하여 1978년 3월에 개관하였다.[12][37][38] 2005년에 리모델링을 실시한 데 이어[50][112] 2010년에도 열람공간의 위치를 변경하는 등의 리모델링을 단행하였다.[113] 중앙도서관 구관과 사범대학본관 사이에 위치한 중앙도서관 신관이 현재 흔히 일컬어지는 중앙도서관이다.
  • 교내 분관 : 중앙도서관은 단행본만 160만권 이상[114]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이다. 교내 도서관은 중앙도서관, 과학도서관, 의학도서관, 세종학술정보원, 보건과학도서관의 5개 분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도서관은 현재 위치한 중앙도서관 신관과 특수서적이 주로 위치한 중앙도서관 구관, 과학도서관, 해송법학도서관, 학술정보관(CDL)을 총괄하고 있으며, 이 중 학술정보관(CDL)은 백주년기념관 내에, 과학도서관은 자연계지역에, 해송법학도서관은 법학관 신관 앞에 위치하고 있다. 모든 분관들을 통틀어 2011년 3월 1일 현재 모두 2,893,496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115]
  • 서관(西館) : 문과대학1946년 9월에 설립된 이래 현재까지 모두 2만 5천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116] 문과대학이 사용하고 있는 서관은 1961년 6월에 준공되었으며[12][117] 중앙광장의 서편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 앞에 '서관'이라는 명칭이 적혀 있지는 않지만 '西館'과 동음어이면서 문과대학의 특성과 맞기 때문에 '서관(書館)'(책을 보관하는 건물을 의미)이라는 별칭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이 건물의 꼭대기에는 4면으로 되어 있는 시계탑이 위치하고 있는데, 1968년 당시 쌍용그룹 회장이었던 김성곤 교우가 희사한 것이다.[118] 시계탑의 규모가 크다 보니 아르바이트생이 페달을 밟아 이 곳의 시계탑을 작동시킨다는 등의 소문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119], 실제로는 이 건물의 3층에 위치한 기계실에 설치된 모터에 의해 가동되는 것이라고 한다. 매일 정오에 이 곳의 시계탑에서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노래가 나오는데, 녹두문대라는 별칭의 유래가 된 이 노래의 선곡에 관해서 학교 측의 공식적인 기록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녹두장군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의미로부터 선곡되었다는 의견을 비롯하여 아리랑보다 더 낫기 때문에 선곡되었다는 의견 등이 존재한다.[107][118]
파일:Hanasquare nightview.jpg
자연계지역 하나스퀘어

자연계지역과 녹지지역

자연계지역에는 2006년 9월 완공된 하나스퀘어를 중심으로 공과대학, 이과대학, 정보통신대학, 생명과학대학의 일부 교수 연구실이 위치하고 있다. 녹지운동장이 위치하고 있어 명명된 녹지지역에는 의과대학간호대학, 생명과학대학의 일부 교수연구실이 위치하고 있고 이 외에도 기숙사와 체육 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

  • 과학도서관과 하나스퀘어 : 1983년 9월에 개관[12]한 과학도서관은 자연계지역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이공계 관련 서적은 대부분 이 곳에서 보유하고 있다. 하나스퀘어는 하나은행에서 130억원을 기부하여 건립된 지하 건축물로서,[120] 2006년 8월에 완공되었다.[121][주 3] 과학도서관과 하나스퀘어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 지상을 통하지 않고 이동 가능하다.
프런티어관 뒷쪽 모습
  • 의료원 : 1971년 12월에 본교는 1970년에 시작된 장기발전계획에 따라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을 흡수 및 합병하였다.[12][123] CJ식품안전관 맞은편에 위치한 안암병원은 고려대학교 의료원 산하에 있는 병원 세 곳 중 하나이며, 1971년 12월 고려중앙학원이 우석학원을 합병한 이후 과거 혜화병원을 1991년 8월 3일 현재 위치에 신축 이전[124]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125] 의료원 오른편에 위치한 건물은 의과대학간호대학이 사용하고 있으며, 이들 건물 사이에는 의학도서관이 위치하고 있다. 의과대학에서는 시신을 기증한 고인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매해 4월 말에 의과대학 뒷편의 감은탑 앞에서 '감은제'를 거행하는데[126], 감은탑 앞이 협소한 관계로 이 행사가 진행될 때는 부득이하게 녹지지역으로 향하는 길을 일시적으로 차단한다.
  • 녹지운동장과 화정체육관 : 녹지운동장은 잔디가 깔려있는 운동장으로, 예약을 하고 이용할 수 있다.[127] 매해 5월 응원단에서 주최하는 '입실렌티 지·야의 함성'이 이 곳에서 진행된다. 이 행사는 화정체육관 공사가 진행되기 이전에는 노천극장에서 진행되었으나, 공사로 인해 노천극장이 폐쇄되어 녹지운동장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화정체육관은 중앙광장, 백주년기념관과 더불어 고려대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48]으로 2006년 7월 25일 건립되었으며, 고려중앙학원에서 공사비 262억원 전액을 출연하였다.[128] 화정체육관 건립 이전에 이 곳에는 노천극장이 있었다.[129][130]

보건과학대학

고려대학교 내 단과대학인 보건과학대학이 사용하는 캠퍼스가 국민대학교 인근 정릉에 위치하고 있다. 과거에는 2·3년제 전문대학인 고려대학교 병설 보건대학의 건물이었으나 2005년 8월 24일 교육부가 통합 신청을 승인하면서 고려대학교와 통합[50]되어 2006년 신입생부터는 고려대학교 소속이다. 2009년 5월에 개관한 보건과학도서관[131]을 비롯하여 호림관, 정의관, 진리관, 보건과학대학 학생회관이 보건과학대학 캠퍼스를 구성하고 있다.[132]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부속고등학교는 이 곳에 위치해 있다.

  • 셔틀버스 문제 : 인문사회계지역 민주광장과 정릉을 오가는 셔틀버스 문제는 보과대에 재학 중인 학생 수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교생실습 등을 나가는 사범대학 학생 수요 등이 겹쳐 근래 들어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분류되고 있다. 두 지역 간을 오가는 데는 15~20분 가량이 소요된다. 셔틀버스의 운행 시간표는 다음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보건과학대학 단과대의 캠퍼스가 정릉에 위치해 있는 것과 관련하여 2011년 5월 23일에서 5월 27일까지 보과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투표가 진행되었으며, 이 투표의 결과를 통해 보과대 학생의 상당수는 안암으로의 캠퍼스 이전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133] 이는 과거 단과대 학장의 인터뷰 내용[134]과 상반된다. 교생실습을 나가는 학생들 수요 문제가 언급되는 것은 정릉 보건과학대학 캠퍼스 내부에 사범대학 부속중·고교가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 각종 문제 : 셔틀버스 문제와 캠퍼스 위치 문제 이외에도 신설 초기의 보건과학대학은 여러 문제점을 떠안고 있었다. 보과대 소속 학생은 보과대 소속 학과를 포함한 다른 학과로의 이중전공이 불가능하여 이로 인해 단과대 학생회 측과 학교 간의 마찰의 원인이 되었으며[135], 학사학위 문제도 이들 문제 중 하나였다. 학교 측에서는 당초 보과대 졸업생에게 일괄적으로 보건학사를 수여할 방침이었으나 각 학과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제기되었으며[136], 단과대 학생회 차원에서 학교 측과 논의한 끝에 식품영양학과 졸업생에게는 이학사를, 생체의공학과 졸업생에게는 공학사를 수여하는 것으로 방침이 변경되었다.[137]
  • 보건과학도서관 : 정릉 보건과학대학 내에 위치한 보건과학도서관1981년 6월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보건도서분실'로 출발하여 2000년 10월 '고려대학교 병설 보건대학 도서관'으로 개편되었으며, 2006년에 이루어진 고려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병설 보건대학의 통합으로 인해 현재의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138] 현재의 도서관 건물은 2009년 2월 24일에 임시로 개관한 데 이어[139] 같은 해 5월 26일에 정식 개관하였다.[131] 보건과학도서관의 공사를 둘러싸고 도서관 신축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의견 뿐만 아니라 정릉이 아닌 안암에 지어야 한다는 의견이 존재하였다.[140]

세종캠퍼스

세종캠퍼스 농심국제관

세종캠퍼스(世宗-)는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읍에 위치한 고려대학교의 또 다른 캠퍼스이다. 1980년에 개교하였으며[141] 1987년 11월 서창캠퍼스를 거쳐 2008년 현재의 세종캠퍼스로 변경되었다.[12][142] 2010년에는 개교 30주년을 맞았다.[143][144] 2011년에 문을 연 약학대학은 이 곳에 위치해 있다.[145]

  • 세종학술정보원 : 세종캠퍼스의 도서관으로서 정식명칭은 세종학술정보원이다. 건물 옥탑에 4면 시계탑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분관대출을 통해 본교에 위치한 자료를 상호 대차 이용할 수 있으며 다음 페이지에서 열람실 좌석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의료원 및 기타 시설

고려대학교 의료원 산하에 안암병원구로병원, 안산병원의 세 곳의 병원이 운영되고 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에 위치한 안암병원은 약 900병상을 가동하고 있으며,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에 위치한 구로병원 또한 약 900병상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안산병원은 약 600병상을 가동하고 있다.[146] 구로병원은 1983년 개원하였으며, 2008년 증축이 완료되었다. 안산병원은 1985년 개원했으며, 1998년 증축하여 시설을 확대 및 개선하였다.[147] 의료원 본부는 의료원 본부는 안암병원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의학도서관과 의과대학 건물 뒷편에 건립 중인 새 의학관이 완공되면 이전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고려대학교 대천수련원

그 밖에 본교 소유의 시설 중 수련원 시설로는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에 위치한 낙산수련원, 충청남도 보령시 신흑동에 위치한 대천수련원[148], 전라남도 완도군 신지면에 위치한 완도수련원이 있으며 이 중 완도수련원은 2010년 8월 10일에 완공되었다.[149] 이 밖에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위치한 송추운동장, 경기도 남양주시 덕소읍에 위치한 덕소농장이 있다. 덕소농장에서는 참기름을 생산하고 있지만 상용화된 제품으로는 판매하지 않으며, 교내에서만 선물용으로 판매하고 있다.[150]

주변 상권

이전 초기에는 정문 앞과 제기동 주변이 학교 주변의 가장 주요한 상권이었으나 안암병원의 개원과 더불어 개운사길의 복개가 이루어져 그 중심이 유흥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 안암로터리 부근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6호선 안암역의 개통을 계기로 안암로터리 부근의 상권이 안암역 사거리까지 확장되어 현재의 참살이길을 형성하였다. 정경대 후문의 24시간 개방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151] 근래에 들어서 단순히 상권의 위치만 옮겨간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식사시간만 되면 밥집 앞에 길게 줄을 서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이었지만, 학생들의 식생활 변화와 연이은 물가 상승 등의 이유로 학교 주변에 위치한 밥집들이 상당한 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52] 최근에는 정문 앞 캠퍼스타운 개발 문제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 있는 상태다.[153]

주요 학생 단체

총학생회

총학생회는 학교 당국과 독립적인 학생들의 요구를 대외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학생자치기구이다. 총학생회의 기원은 이승만 정권 당시 존재하였던 중앙학도호국단의 해체와 관련이 깊다. 1960년 4·19 혁명 후 학생들은 1949년 9월 이승만 정권 당시 대통령령 86호로 결성된 학도호국단[154]과 관련하여 '어용기구인 중앙학도호국단에서 탈퇴하여 이의 해산을 강력히 주장한다'고 선언하였으며[155], 이와 같은 주장이 5월 4일 국무회의를 통해 실현[156]된 것이 현재 총학생회의 기원이다. 1965년 교칙위반을 이유로 활동정지 처분되는 사건이 있었으며[157] 1975년 6월에는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로 학도호국단으로 재편되는 수모를 겪는 등 탄압으로 인해 그 명맥이 끊어질 뻔한 적도 있었으나[158] 1984년 학도호국단을 폐지한 이래[159][160] 매년 선거로 총학생회가 선출되고 있으며 2011년 현재 44대 총학생회 '후마니타스'가 활동하고 있다. 학생처가 총학생회 활동의 지원을 담당하고 있으며[161] 학생 복지를 관장하는 기구로 학생복지위원회라는 별도의 기구가 존재한다.

학내 공식 언론단체

안암캠퍼스 풍경
  • 고대신문(주간신문) : 1947년 창간[162]되어 학생 주도로 발행하는 고려대학교의 주간 교내신문으로, 발행비용은 학교 당국이 보조한다. 1960년 4월 2일 '우리는 행동성이 결여된 기형적 지식인을 배격한다'며 학생들이 독재정권에 저항할 것을 호소한 날카로운 사설[163]은 4·18 고대생 의거의 촉매제가 된 명문으로 유명하며, 1975년 긴급조치 제7호 당시 학교 앞에 진주한 군대를 상대로 학생들이 교문을 막고 서 있는 사진과 함께 실린 '고대의 문은 누구도 닫을 수 없습니다'라는 광고는 수많은 교우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였다.[18] 그러나 최근 들어 특정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기사보다는 학내 뉴스 위주로 1면을 내보내고 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164] 서울대에서 발생한 대학신문 학생기자단의 편집권 투쟁[165]과 관련해 학생기자들의 투쟁을 촉구하는 의견이 게재되기도 하였다.[166] 한편 편집권 관련 분쟁으로 인해 서울대 대학신문의 2004년 11월 15일자 신문은 정상적으로 발행되지 않았다.[167] 1998년부터 인터넷 고대신문이 발행됨에 따라 인터넷으로도 고대신문의 기사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162] 신문사는 홍보관 건물 2층에 위치하고 있다.
  • The Granite Tower : 학내 영자신문사인 'The Granite Tower'는 현 YBM Sisa 민영빈 회장이 1954년 창간하였으며 고려대학교 유일의 영자 매체이다. 1997년에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하였다.[168] 신문사의 위치는 홍보관 2층이다.
  • 고대문화(월간지) : 1945년 창간된 고려대학교의 교지. 본래 학기마다 1회 발행하였으나, 2003년부터 월간으로 전환하였다가[169] 2010년부터는 계간으로 전환되어 발행 중이다.[170] 고대신문과 달리 학생들이 납부하는 교지대에 의존해 발행한다. '세계를 변혁하는 대항언론'을 표어로 하고 있으며, 학내외 여러 사안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많이 낸다.[171] 또한 총학생회 계열의 학생운동 세력과 다른 대안적인 주장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학생회비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교지대는 등록금과 함께 학교당국이 수납을 대행하는 일괄납부 방식이었으나, 일부 학생들의 반발로 2005년 2학기부터 분리납부로 전환되었다.[50]
  • KUBSKUTV, KTN, KDBS : 교내교육방송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KUBS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라디오 방송을 한다. 학내 특별 사안에 대해서는 특별방송을 하며, KUBS의 방송은 인터넷으로도 들을 수 있다.[172] TV 방송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KUTV는 학내 곳곳에 설치된 TV를 통해 아침, 점심으로 방송을 하며,[173] 정규 방송은 1주일 단위로 편집된다.[174] 교내 TV 방송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KTN은 교내 행사의 영상 기록을 하고, 정규 프로그램을 만들어 송출하며[175], 교내 케이블TV 채널 4번을 통해 24시간 방송을 한다. 이와 별도로 세종캠퍼스 내 학교 부속 언론기관[176]인 KDBS도 운영되고 있다.
  • 석순(여성주의 교지) : 1983년부터 시작[177]된 여성주의 교지로, 고대문화와 더불어 학생회비의 일부를 구성하는 교지대에 의해 운영된다. '고대문화'와 마찬가지로 교지대 강제 징수를 둘러싸고 진통을 겪었다.[50] 학기당 1회 발행하며, 학내외 여성주의 문제 전반을 다룬다.

기타

  • 고려대학교 응원단 : 고려대학교 응원단은 1927년 11월 처음 치러진 보연전 시절부터 비공식적인 단체로 시작하여, 1968년부터 교내의 공식적인 단체로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정기 및 비정기 고연전[178]을 이끌며, 고려대학교가 참여하는 스포츠 행사, '입실렌티 지·야의 함성'[179] 등에서 응원을 담당한다.[180] 입실렌티 등 응원단이 주관하는 행사의 일정은 고려대학교 응원단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고려대학교 학생홍보대사 여울 : 고려대학교 대외협력처 홍보팀에 소속되어 재학생들로 이루어진 교내의 공식 홍보단체이다. 1998년 9월 1기가 선발[181]된 이래 2011년 현재 13기가 선발되어 여러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고려대학교를 방문하는 일반인들에게 캠퍼스 견학을 제공하고, 입학식과 졸업식, 비전 선포식 등 교내·외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여 고려대학교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정기견학 일정 등은 여울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세종캠퍼스홍랑이라는 별도의 학생홍보대사를 운영하고 있다.
  • 생활도서관 : 타 대학 학생 또는 일반 시민에게도 개방하며 운영 전반에 걸친 부분을 학교의 간섭을 받지 않고 학생들 스스로 해결한다는 점이 특징인 생활도서관은 1990년 5월 전국 대학 최초로 설립되었다.[182][183] 2003년에는 장애인권위원회, 언론자치활동모임 불한당과 함께 '올리브'(OLIB) 운동이라 불리는 대학도서관 개방운동에 참가하였다. 이화여대의 '올리버'(OLIBER) 운동과 맥락을 같이한 이 운동을 통해 생활도서관은 대학 도서관의 완고한 장벽을 철폐할 것을 주장하였다. 한편 이와 같은 움직임에 대해 열람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근거로 하는 학생들의 반발 또한 존재하였다.[184][185]
  • 고전음악감상실 : 1978년 처음 만들어진 이후 학생들의 휴식공간 등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다양한 장르의 고전음악과 이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며 신청곡을 받아 멘트와 함께 틀어주기도 한다.[186] 홍보관 1층에 위치해 있다가 중앙광장 120호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로 인해 평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이루어지던 감상실 운영이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로 줄어들게 되었다. 이처럼 이용 가능 시간이 줄어들게 된 것은 새로 옮겨간 공간이 수업 용도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문제점에 직면하게 되자 감상실 측에서는 2011년 2월부터 재학생 커뮤니티인 고파스를 통한 '24시간 클래식 음악방송'을 개시하게 되었다. 현재는 더 풍성한 콘텐츠 제공을 위해 8월 31일까지 방송을 일시 중단한 상태다.[187]
  • 재학생 커뮤니티 : 재학생 커뮤니티로 고파스가 운영되고 있다. 학교 측이 직접 운영하는 기존의 자유게시판의 경우 게시물이 삭제되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하였으며 이에 대한 반발로 2007년 3월 결성되었다.[188] 국내 주요 대학의 온라인 커뮤니티 연합체인 UCAN에 가입되어 있다.[189] 한편, 세종캠퍼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커뮤니티 쿠플존도 운영되고 있다.

연례 행사

사발식

사발식(沙鉢式)은 신입생들이 커다란 사발에 부어 놓은 막걸리를 선배들이 불러주는 '막걸리찬가'에 맞추어서 마시는 행사를 말하며, 고려대학교의 교우로 남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190]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사발식의 기원이 언제부터였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와 같은 문화가 1970년대 즈음에 생겨났다는 증언이 존재한다.[191] 신입생환영회에서 많은 양의 막걸리를 마시도록 하는 것에는 "그간의 획일화된 교육과 얽매인 생활의 묵은 때를 모두 토해 비워버리고 학문의 진리와 민족의 정의를 위해 나아가는 고대인이 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192] 선배들이 불러주는 '막걸리찬가'의 내용이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늘 일정하게 유지된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전주 부분에 육두문자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현재의 노래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노래의 처음 부분에 있던 '사내답게' 가사에 성적 편견이 다분하다는 지적에 따라 현재는 '고대답게'로 바뀌었다.[190]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고 있을 만큼 독특한 형식을 취하지만 이 행사에 대한 비판 또한 존재한다. 사발식을 비롯한 고대 문화가 지나치게 남성적이며, 이와 같은 문화의 형성에 여학우들의 경험이 반영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그것이다.[193] '막걸리찬가' 자체가 남성 편향적이라는 비판 또한 존재하였다.[194]

동아리 박람회

동아리 박람회(-博覽會; 약칭 '동박')는 고려대학교에 소속된 각 동아리들이 학부 신입생들에게 홍보를 하는 행사이다. 매년 3월 중에[195], 고려대학교 중앙동아리연합회 주최의 동아리 박람회와 애기능동아리연합회 주최의 동아리 박람회가 각각 이틀 간 민주광장과 애기능학생회관 앞에서 열린다.[196] 2010년 3월 현재 모두 185개의 동아리가 교내에 등록되어 있다.[197] 동아리 구성원들은 박람회 외에도 포스터나 공연, 콘서트, 지인을 통한 여러 홍보활동을 통해 그들이 속한 동아리를 알린다.[198]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추고, 전체동아리대표자회의를 거쳐 가등록과 정식 등록 절차를 거친 동아리는 중앙동아리로 활동할 수 있으며[199], 이미 등록된 동아리들도 매년 재등록신청서를 작성하여야 한다.[198] 애기능동아리연합회 소속의 동아리로 활동하고자 할 때도 비슷한 절차를 거치게 된다. 중앙동아리로 인가를 받으면 동아리방을 배정받고 학교의 지원금을 받게 되는데[199], 교비를 지원받으려면 정해진 기간 내에 교비 지원 신청을 해야 한다.[200]

4·18 기념 마라톤과 구국대장정

매년 4월 18일에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4·18 의거를 기념하기 위해 4·18 기념 마라톤과 구국대장정을 진행한다. 헌화 행사에 이어 오전에는 기념 마라톤이, 오후에는 구국대장정이 진행된다.[31][201] 기념 마라톤은 1969년 당시 총학생회에서 처음으로 만든 이래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학교를 출발하여 국립 4·19 묘지를 거쳐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총 16.2km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최종 목적지가 국립 4·19 묘지로 설정되어 있는 것에는 4·18이 4·19 정신으로 이어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와 같은 행사는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도 이어져 마라톤이라는 형식을 빌려 불의에 맞서 싸우는 기능 또한 담당하였다.[202] 구국대장정은 각 단과대별로 모여 교내 중앙광장을 출발하여 수유동 국립 4·19 묘지까지 행진한 다음, 4·19 기념탑에서 참배한 후 학교로 다시 돌아오는 형식을 띄는 행사로, 이 행사 또한 1969년에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행사 초기에는 시민들의 불편을 우려하여 참가자 수에 제한을 두었으나 1984년부터 이 제한이 폐지되었다. 이 행사에서의 구호는 해당연도의 이슈 또는 시대적인 변화가 반영된 것으로, 이를 구호 뿐만 아니라 팜플렛을 통해서도 시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선배들의 정신을 계승한다기보다는 고대생이 되기 위한 하나의 절차 정도로 인식되는 것과 관련하여 알맹이가 빠져 있다는 의견들이 존재하는 반면, 꾸준히 행사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203]

석탑대동제

매년 5월 중에는 석탑대동제(石塔大同祭)라는 이름의 학생 축제가 열린다. 1962년 5월 4일부터 3일간 개최된 '석탑축전'이 이 행사의 연원으로 알려져 있는데[204], 여기서 '석탑'이라는 이름은 당시 본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조지훈 선생이 지었다고 한다. 석탑축전이 '대동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84년의 일이다.[205][206] 사회 비판적인 행사를 통해 학생들의 참여의식을 고취하였으며, 당시 독재정권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한 학생들을 추모하는 합동위령 굿 등을 지내면서 3년 후인 1987년에는 전국 대부분의 대학에서 '대동제'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열 정도로 '대동제'라는 이름은 대학가 전역에 널리 퍼져나갔다. 인문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정태환 교수는 '교내 구성원 간에 소속감과 일체감을 느낀다는 면에서 스트레스 해방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면서 교내 축제에 그 의미를 부여하였다.[206] 석탑대동제는 개교기념일의 대표 행사였으나 2000년대 들어 개최기간이 길게는 3주까지 미뤄지며 개교기념일과의 거리가 멀어졌다.[205] 대동제 기간에는 여러 학과/반 학생회와 동아리에서 주점을 비롯한 각종 이벤트들이 교내 곳곳에서 개최되며, 주요 행사 일정은 교내에 비치된 고대신문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10년에 총학생회와 모자이크축제기획단 사이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석탑대동제와 모자이크축제가 각각 한 주씩 따로 열리는 사건이 발생[207]함에 따라, 그 이듬해인 2011년에 중앙운영위원회(중운위)는 축제만을 전담하는 '축제특별위원회(축특위)'를 신설하고, 신설 기구에 2011년 대동제에 대한 집행권한을 위임하였다. 2011년에 처음 설치된 이 기구가 상설화되려면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상설기구로 인준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208] 대동제 기간에 애기능 지역에서는 애기능동아리연합회의 주도로 별도의 행사가 열리며, 2011년의 경우 공과대, 생명대, 이과대, 보과대, 정통대의 5개 단과대학이 참여하여 노벨광장을 주 무대로 'Sound Festival'과 '애기능 실루엣 가요제', '애기능 요리 경연대회' 등과 더불어 각종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펼쳐졌다.[209] 한편, 상대적으로 행사가 적은 2학기에는 문과대 학생회가 주관하는 녹두축전이 열린다. 2010년 10월 5일10월 6일 양일간 개최된 녹두축전에서는 찻집과 전공박람회, 밴드 공연 등이 개최되었다.[210]

입실렌티 지·야의 함성

2011년 입실렌티 무대

입실렌티 지·야의 함성(Ipselenti: 知野의 喊聲)은 주로 석탑대동제 마지막 날 저녁을 기해 고려대학교 응원단이 주최하는 응원제로 2011년에 34회째를 맞았다. '입실렌티(Ipselenti)'란 보성전문학교 시절부터 사용된 고려대학교의 교호(校號)의 일부이며, '지·야'란 지성(知性)과 야성(野性)을 가리킨다. 학우들의 참여 프로그램, 초청 연예인들의 공연과 응원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교가교호로 행사를 마무리한다. 교가와 교호로 행사를 마무리하는 방식은 입실렌티 이외의 공식적인 행사에서도 일반적이다.[211][212]

  • 응원곡 : 응원단에서는 매년 고연전 오티를 기해 응원곡 신곡을 발표하고 있다.[213] 응원 문화가 현재와 같은 형태를 띄게 된 것은 1968년 응원단이 조직된 이후의 일이다. '뱃노래'가 체계를 갖춘 최초의 응원곡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이 곡은 1974년에 발표되었다. 1981년에 발표된 '엘리제'에는 당시의 디스코 문화가 반영되어 있으며, 이듬해인 1982년에 발표된 '석탑'에는 반정부 정서가 가미되어 있다.[214] 2003년에 발표된 '민족의 아리아'[215][216]2007년에 발표된 '들어라 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와 'Forever', '캉캉' 또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최근에는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동작들이 가미된 응원곡들 또한 등장하고 있다. 응원단 측에서는 응원곡을 제작 및 발표할 때 얼마나 많이 불릴지를 예측해서 이들을 3개의 등급으로 분류한다고 한다.[214]
  • 교가와 교호 : 현재 사용되고 있는 교가1955년 개교 50주년을 맞아 제정된 것이다.[217] 작사는 조지훈 선생이[218], 작곡은 윤이상 선생이 맡았다.[219] '입실렌티 체이홉, 카시코시 코시코, 칼 마시 케시케시 고려대학! 칼 마시 케시케시 고려대학!'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교호에는 현실 또는 사회에 비판적이었던 세 명의 이름이 담겨 있다. '입실렌티'는 19세기 오스만 투르크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알렉산드로스 입실란티스의 이름에서 나왔고, '체이홉'은 작가 안톤 체호프라는 설과 동명의 러시아 혁명가라는 설이 존재하고 있으며, '카시코시 코시코'는 폴란드의 혁명가 코시치우슈코로부터 유래한 것이라는 설과 카시코시우스라는 그리스인으로부터 유래하였다는 설이 존재한다. '칼 마시 케시케시'는 칼 맑스가 계시다 계시다라는 말의 격음화 겸 축약이다.[212][220][221]

고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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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전(올림픽주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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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정기 고연전(잠실야구장)

고연전(高延戰)은 애교심을 고양하고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 양교의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178] 스포츠 경기[222]를 비롯한 강연[223], 온라인 게임[224], 사회공헌활동[225][226]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연세대학교(延世大學校)와 승부를 겨루는 행사 일체를 의미한다. 고연전은 매년 9월에 연세대학교 5개 종목의 운동부 선수들과 맞붙는 '정기 고연전'[178]과 정기 고연전 이외의 기간에 열리는 '비정기 고연전'[227]으로 크게 나누어볼 수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교내에 축구부, 럭비부, 야구부, 농구부, 아이스하키부 등 5개 종목의 스포츠단체가 활동하고 있다.[228] 흔히 일컬어지는 '고연전'이라는 명칭은 '정기 고연전'을 의미하며[229], 아래에 이어지는 설명도 '정기 고연전'에 관한 것이다.

  • 고연전의 역사 :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1925년 5월 30일에 열린 조선 체육회 주최 '제5회 전조선(全朝鮮) 정구대회'에서 처음으로 맞붙었다. 양교의 실질적인 첫 전면시합이 열린 것은 1927년 경성운동장에서 거행된 제8회 전조선 축구대회 준결승에서의 일이다. 1943년에 징병제가 실시되어 시합이 중지되기 전까지 보성전문학교연희전문학교를 상대로 축구대회에서 31전 17승 14패를, 농구대회에서 62전 30승 32패를 기록하였다.[230] 정기전은 광복 이후 1945년 12월 21일부터 이틀간 열린 '제1회 보연 OB 축구대회'를 통해 부활하였다. 이듬해인 1946년에는 양교의 교명이 바뀌었으며[13][231][232] 이에 따라 '보연전'이라는 명칭 또한 '고연전'으로 바뀌었다. 1946년부터는 축구농구의 재학생 간 정기전이 매년 열리게 되었고, 1956년에는 야구, 럭비, 빙구의 세 종목이 추가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규모의 고연전 기틀이 마련된 것은 1959년의 일이다. 1961년부터 1964년까지는 5·16 군사정변 등의 이유로 정기전이 열리지 않았다.[230] 1965년부터는 이틀 동안 다섯 경기가 일제히 치러지는 지금과 같은 경기방식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으며, 1970년대 중반부터 점차 고연전 때 붉은색 티셔츠를 입기 시작하였다.[233] 한동안 '민족해방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234] 역대 정기 고연전 전적은 다음과 같다.
  • 정기전의 명칭과 일정 : 매년 9월에 열리는 정기전(정기친선경기대회)은 고연 양교가 매년 번갈아 주관한다. 정기전의 공식적인 명칭은 정기전을 주최하는 학교의 이름을 뒤에 붙이는 방식으로 정해지는데, 연세대학교가 주최하는 정기전 행사인 경우 '고연전'이 정식 명칭이 되는 식이다.[235] 그러나 정식 명칭은 실질적으로 방송 중계나 신문 보도 등의 공식 석상에만 사용될 뿐이며, 고려대학교에서는 고연전, 연세대학교에서는 연고전이라는 명칭으로 통용된다.[236] 고연전을 며칠 앞두고 세종 오리엔테이션과 안암 오리엔테이션, 합동 오리엔테이션이 각각 진행되며[237], 정기 고연전이 끝난 후에는 교우회 주최로 선후배 간의 화합의 장인 '1905 페스티벌'이 열린다. 동기회, 학과 교우회, 졸업생 개인이 학교 인근 주점을 예약해 후배들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행사로, 68학번 동기회가 참살이길의 삼성통닭을 통째로 빌린 것이 이 행사의 시초이다.[238][239]
  • 고연전에 대한 평가 : 고연전에 대해 양교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전통 있는 행사라는 의견과 달리[240] 이 행사가 폐쇄적인 엘리트 의식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있다.[241] 지나친 성적 지상주의[242]와 '그들만의 집합행동'으로 요약되는[243] 뒤풀이 문화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하였으며[242], 2003년에는 교내 일부 학생 단체에 의해 '안티 고·연전 실천단'이 결성되어 고연전을 반대하는 운동이 전개되기도 하였다.[244]

교우회 및 고려대학교 출신 유명인

  • 고려대학교 교우회 : 고려대학교 출신 교우들의 모임인 '고려대학교 교우회'는 1907년 1월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 동문회인 보전 친목회로 창립되었다. 초대회장은 조성구(趙聲九)가 맡았으며[245] 현재 교우회장은 이양섭(경영57) 교우가 맡고 있다.[246] 호남향우회, 해병전우회와 더불어 특별한 유대와 결속을 자랑하는 3대 모임의 하나로 일컬어질 정도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상당히 강한 결속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결속력은 이명박 대통령의 출마와 당선 과정에서도 확인되었지만, 1990년대 후반 들어 입학생들의 구성이 변화함에 따라 현재의 결속력이 향후 약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존재한다.[247][248] 2010년 6월에는 교우회장 자리를 맡고 있던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으며[249], 이는 2011년 4월 28일에 개최된 대의원 정기총회 자리에서 구천서 차기 교우회장 후보의 인준 안건을 부결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250] 교우회관 건물은 1994년 9월 29일에 기공하여 1996년 5월 30일 문을 연 것으로[251] 사범대학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 고려대학교 출신 유명인 : 고려대학교는 지난 100여년의 역사동안 수많은 유명인을 배출하였다. 독립운동가 손병희보성전문학교의 중흥자였으며[252], 그밖에 학계, 정치계, 체육계, 예술계, 언론계, 법조계, 연예계, 금융계에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바 있다.

주해

  1. 인문사회계의 진입공간은 '2005 서울사랑시민상 환경부문'의 조경생태 부문에서 수상한 바 있다.[100]
  2. 중앙광장은 서울시가 주는 '올해의 조경상'을 수상한 바 있다.[111]
  3. 하나스퀘어 건물은 2007년에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122]

주석

  1. “교훈”. 고려대학교. 2011년 7월 27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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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소민 기자. “신설 대외부총장에 윤영섭 교수”. 고대신문. 2011년 8월 14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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