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시바견과 누렁이 사이에서
유기견 '푸코'와 함께 사는 작가 윤끼는 늘 의문을 품는다. 푸코는 시바견도, 누렁이도 아닌데... 그렇다면 우리 개는 어느 집단에 속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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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명체를 식구로 맞이하기 위해선 범주화의 오류에서 벗어나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하여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질문한다.
녀석이 무슨 종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의 한쪽 눈이 부풀어 오르기 전까지는. 5년 전 푸코의 눈이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과묵한 성격이라 아프다는 소리 한 번 내지 않는 녀석을 데리고 동물병원을 찾았다. 결막염 진단을 받은 지 2주가 흘렀지만 도저히 가라앉을 기미가 없어 녀석을 안고 다시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왼쪽 눈의 안압이 크게 치솟아 뇌를 누르고 있었고, 녹내장 혹은 망막변성이라는 병명이 내려졌다. 명확한 원인은 없고 투약과 시술, 수술까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음에도 완치는 불가하다는 병. 수소문 끝에 안과로 유명한 동물병원을 찾았는데, 녹내장으로 박사 논문을 쓴 수의사 선생님은 일본에서 녹내장 진단을 받은 개 중 70%가 시바견이라는 말을 건넸다. 그렇게 푸코는 슬프게도 ‘어쩌면’ 시바견일 수 있겠다는 과학적 근거를 얻었다. 물론 이렇게 푸코의 견종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지만. 의사는 원인 불명의 녹내장은 유전질환이기에 미리 알았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녀석이 시바견임을 알았더라면, 적어도 결막염이라는 진단에 한 번 더 의구심을 품었다면 두통으로 고통스러워했을 시간을 줄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인지 푸코는 유일한 낙이었던 식탐을 잃었고, 빽빽하던 털은 힘없이 빠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만약에’라는 표현이 아무런 힘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만약 푸코가 시바견이라는 걸 알았더라면…’이라는 문장이 죄책감처럼 머릿속에 누덕누덕 뒤엉켰다. 집안 가족력에 당뇨가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꾸준한 혈당 관리와 운동을 시도하는 것처럼 푸코의 뿌리와 견종을 진작 알았더라면 녀석의 질병이 덮쳐올 시간을 어느 정도 지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품종’이라는 단어는 어감부터 썩 달갑지 않게 느껴졌기에 나는 녀석을 의도적으로 ‘사랑스러운 개’라는 대범주에 넣어두고 있었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어떤 종인지가 왜 중요한가. 그러나 녹내장이 한차례 우리를 휩쓸고 난 뒤 녀석의 질환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견종별 특징을 찾아보았다. ‘세상에 같은 개는 없다’지만 각각의 견종마다 고유의 성향과 취약한 유전질환이 존재했다. 푸코처럼 늑대와 유전형질이 비슷한 ‘스피츠류’의 개들은 예민하고 독립적이며, 깔끔한 편이라고 한다. “개가 애교가 없어”라며 뻣뻣한 푸코에게 볼멘소리를 했던 아버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며 유기된 기억이 있어 사람에게 살가운 편이 아니라고 항변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시바견 비스무리한 푸코는 뼛속부터 ‘마이 웨이’였을 것이란 무의미한 추측으로 말이다. 찾아본 여러 정보 사이 어느 수의사가 블로그에 쓴 글은 ‘시바견의 대표적 유전질환으로 녹내장과 백내장, 슬개골 탈구, 고관절 이형성증 등이 있습니다’라는 말로 끝맺음을 했다. 상처투성이였던 녀석을 사랑으로 돌보면 되겠다는 어설픈 애정에 대한 후회와 더불어 녀석의 지난 행동들이 이제야 비로소 이해됐다. 하지만 ‘견종’에 따른 분류는 어디까지나 녀석을 이해하기 위한 수만 가지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분류라는 것은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마련이다. 덕분에 나 역시 개와 식구가 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함께 살아가는 데 불편함을 소거할 수 있는 편의를 누렸다. 또 다른 ‘종(Species)’이자 식구인 우리 집 고양이에게는 푸코가 어떤 ‘종(Breed)’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캣타워 맨 꼭대기에서 유심히 낯선 이를 관찰했을 뿐이다).
사실 ‘품종’이라는 단어는 어감부터 썩 달갑지 않게 느껴졌기에 나는 녀석을 의도적으로 ‘사랑스러운 개’라는 대범주에 넣어두고 있었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어떤 종인지가 왜 중요한가. 그러나 녹내장이 한차례 우리를 휩쓸고 난 뒤 녀석의 질환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견종별 특징을 찾아보았다. ‘세상에 같은 개는 없다’지만 각각의 견종마다 고유의 성향과 취약한 유전질환이 존재했다. 푸코처럼 늑대와 유전형질이 비슷한 ‘스피츠류’의 개들은 예민하고 독립적이며, 깔끔한 편이라고 한다. “개가 애교가 없어”라며 뻣뻣한 푸코에게 볼멘소리를 했던 아버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며 유기된 기억이 있어 사람에게 살가운 편이 아니라고 항변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시바견 비스무리한 푸코는 뼛속부터 ‘마이 웨이’였을 것이란 무의미한 추측으로 말이다. 찾아본 여러 정보 사이 어느 수의사가 블로그에 쓴 글은 ‘시바견의 대표적 유전질환으로 녹내장과 백내장, 슬개골 탈구, 고관절 이형성증 등이 있습니다’라는 말로 끝맺음을 했다. 상처투성이였던 녀석을 사랑으로 돌보면 되겠다는 어설픈 애정에 대한 후회와 더불어 녀석의 지난 행동들이 이제야 비로소 이해됐다. 하지만 ‘견종’에 따른 분류는 어디까지나 녀석을 이해하기 위한 수만 가지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분류라는 것은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마련이다. 덕분에 나 역시 개와 식구가 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함께 살아가는 데 불편함을 소거할 수 있는 편의를 누렸다. 또 다른 ‘종(Species)’이자 식구인 우리 집 고양이에게는 푸코가 어떤 ‘종(Breed)’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캣타워 맨 꼭대기에서 유심히 낯선 이를 관찰했을 뿐이다).
한편 이런 편의를 위한 범주화는 개인과 맥락을 지우기도 한다. ‘눈치가 빠르고 민첩하며 머리가 영민하여 훈련하기 좋다’는 보더콜리라는 견종의 특성 때문에 입양됐지만, 넘치는 에너지로 온 집 안을 헤집어놓는 까닭에 유기당한 보더콜리 A처럼 말이다. 품종의 여부가 A를 유기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종의 특성이 그에게 쉬이 가족을 만들어주었다가 빠르게 빼앗았다. 도시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몰티즈는 귀엽고 앙증맞은 외모로 아파트 주거문화에 적합해 선호되는 견종이다. 그리고 많이 유기되는 품종견 중 하나이기도 하다. 품종견이라서 버려지지 않고 비품종견이라서 버려지는 이분법적 잣대를 대는 이들의 변명은 참으로 다양하고, ‘유기하려는 결심’은 너무나도 강력하다. 유기동물보호 앱에 매주 업데이트되는 유기견들은 그런 결심의 결실들이었다. 그냥 인간들의 조건부 사랑의 유효기간이 다했을 뿐일 텐데 말이다.
완벽한 식구의 조건은 처음 마음가짐과 달리 무한하게 확장된다. 함부로 질병이 생겨선 안 되고, 외모가 형편없게 변해서도 안 되며, 혹은 이사 갈 환경에 적합해야 하고, 추후라도 알레르기 같은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되고, 예상보다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도 안 된다. 그럼에도 새로운 세계를 통한 환희를 얻고 싶다면 이 ‘불확실한 것’을 감수할 용기가 필요하다. 일말의 희생 없이 환희만 취식하려는 마음은 비겁한 ‘유기’로 이어진다. 어떤 생명체(비단 개나 고양이뿐 아니라 인간도)를 식구로 맞이하기 위해선 범주화의 오류에서 벗어나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한 집에 살게 된 개와 고양이, 인간은 종(Species)과 종(Breed)을 뛰어넘어 시간을 축적해 가며 각자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어떻게 모양새가 변해가는지 살피고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하여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질문한다. 반려생활을 결심한 이상 ‘종’이라는 허울을 걷어내고, 눈앞의 나만 바라보고 있는 털 뭉치들과 순간을 뜨겁게 만끽하면서 말이다.
오늘도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이들이 물어온다. “시바견인가요?” 시바견과 누렁이 사이를 오가지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나의 반려견. 해가 지날수록 늘어나는 녀석의 턱살을 조물조물 만지작거리며 녀석은 같이 사는 고양이와 인간을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특별상을 수상한 <유기견, 유기묘, 유기인의 동거일지>의 저자이자 유기견 푸코와 흰 고양이 두부의 동거인이다. 그는 스스로 ‘유기인’이라 칭한다. 윤끼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일러스트레이터 KAY MCDONAGH
- 글 YOONKKI
- 아트 디자이너 구판서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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