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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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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6일 (일) 10:43 판

최계훈
Choi Gye-Hoon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61년 6월 6일(1961-06-06)(63세)
출신지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신장 180 cm
체중 81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84년
드래프트 순위 1984년 1차 3순위(삼미 슈퍼스타즈)
첫 출장 KBO / 1984년 4월 7일
인천삼성전 선발
마지막 경기 KBO / 1986년 & 1990년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감독 경력


최계훈(崔桂勳, 1961년 6월 6일 ~ )은 지난날 전직 KBO 리그 태평양 돌핀스투수였던 이였으며 훗날 야구 감독을 지냈다.

그는 창영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으나 5학년 때 당시 리틀야구 강세였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할 때까지 하숙생활을 했고[1] 중학교(인천남중) 때부터 고향 인천으로 돌아왔으며 한때 중앙대 진학설이 있었으나[2] 인하대로 방향을 틀었고 중앙대는 본인(최계훈) 이후 성준[3] 스카우트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며 중앙대 외에도 고려대가 본인(최계훈) 스카우트 경쟁을 펼쳤지만[4] 일찌감치 탈락했다.

선수 시절

1984년에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으며 프로 입단 직전까지 14번을 달았지만[5] [6] 프로 데뷔 후 41번을 착용했는데 이 등번호는 60년대 ~ 80년대 메이저리그 명투수였던 톰 시버의 등번호다[7]. 1984 시즌 개막전 선발 투수로 등판하면서[8] 프로에 데뷔하였다.

1985년에 입단하였다. 1985년 3월 31일 당시 롯데 자이언츠의 신인 투수였던 박동수에게 완봉패를 당한 것을 시작으로 삼미 슈퍼스타즈가 당한 18연패를 4월 30일 MBC전에서 그가 완봉승을 거두며 벗어났다.[9]

현역으로 복무해 제대 후 복귀했으나 2군에 머무르다 은퇴했다.

야구선수 은퇴 후

은퇴 후 심판 자격을 취득해 야구 심판으로 일하다가 1994년 태평양 돌핀스 투수 인스트럭터를 맡아 현장에 돌아왔는데[10] 정동진 당시 태평양 감독은 본인(최계훈) 외에도 1988년을 끝으로 한동안 고향 팀(태평양)을 떠나 현장 복귀와 거리가 멀었다가 1989년 시즌 후 삼미-청보 시절 인연을 맺은 김진영 감독이 2년 계약 형식으로 롯데 자이언츠 감독에 부임하면서 같은 시기 2년 계약을 맺어 현장에 돌아왔지만[11] 김진영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1990년 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도중하차한 데다 그 해 말 강병철 감독이 부임하면서 다음 해 말 소위 "김진영 라인" 지우기에 따라 퇴출된 김무관을 같은 시기 태평양 돌핀스 2군 타격코치(1995년 스카우트로 잠깐 보직 변경)[12], 1990년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은 뒤 다음 해부터 이 팀에서 코치를 역임했으나 1991년 시즌 후 이광환 감독이 부임하면서 소위 "백인천 라인" 지우기 일환에 따라 1992년을 끝으로 팀을 떠나 한동안 현장 복귀가 거리가 먼 양승관 전 LG 트레이닝 코치를 1994년 태평양 트레이닝 코치[13]로 영입하는 등 인천 출신 인사들을 태평양으로 복귀시켜 줬는데 이들 외에도 1983년을 끝으로 고향 인천을 떠나 OB 베어스에서 1군 투수코치(1984년~1987년, 1990년 시즌 중 ~종료) 2군 투수코치(1988)[14] 2군 감독대행(1989년) 2군감독(1990년 시즌 중)[15]을 맡았던 이선덕1991년 태평양 투수코치를 맡아 고향 인천에 돌아왔고 다음 해 정동진 감독의 부임 과정에서 정 감독과 함께 대구상고-제일은행 시절 선수생활을 같이 한[16] 류영수 삼성 2군 감독이 1군 수석-투수코치로 부임하자 2군 투수코치로 보직을 옮겼으며 한때 김시진(당시 롯데 선수)을 투수코치로 영입할 계획도 있었지만 대구 출신 코치들이 많다는[17] 이유로 좌절되기도 했고 이외에도 정동진 감독의 전임이자 정 감독의 삼성 시절 전임 감독이기도 한 박영길 감독은 삼성 부임 2년째인 1988년 2월 16일부터 1년 계약 형식으로 삼성 2군 투수코치를 맡은 사람이면서 삼미-청보 시절 인연을 맺은 김진영 감독이 1989년 11월 2일 2년 계약 형식으로 롯데 자이언츠 감독에 부임하자[18] 같은 달 30일부터 1년 계약으로 롯데 투수코치를 맡았으나[19] 김진영 감독이 1990년 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중도하차한 데다 같은 해 말 강병철 감독이 재부임하면서 단행된 물갈이에 따라 팀을 떠난 장명부이선덕에 앞서 태평양 투수코치로 영입할 예정이었지만[20] 구단 측의 반대로 무산됐으며 정동진 감독의 부임 과정에서 장효조 (당시 롯데 선수)의 태평양 코치설이[21] 있기도 했다. 하지만, 태평양은 정동진 감독 부임 첫 해인 1992년 정민태 정명원 등 주축 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부진하자[22] 팀은 8팀 중 정규시즌 6위에 그쳐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태평양 구단은 1992년 6월 류영수 1군 수석 겸 투수코치를 2군 투수코치, 이선덕 2군 투수코치를 1군 수석 겸 투수코치로 보직 변경시켰으며 1993년 1월 김시진을 1군 투수코치로 영입했고[23] 김시진 코치 영입 과정에서 이선덕 1군 수석 겸 투수코치가 2군감독, 류영수 2군 투수코치가 1군 수석코치로 보직 변경됐다. 그 뒤, 1995년 태평양 재활군 투수코치로 본격적인 코치생활을 시작하여 1996년부터 현대 유니콘스의 2군 투수코치를 맡았으며 그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코치를 맡고 있었던 박종훈과 인연을 맺게 됐는데 1999년 시즌 후 현대에서 재계약을 포기하여 한동안 현장 복귀와 거리가 있었으나 2000년 시즌 후 SK 와이번스 2군 투수코치를 맡으면서 현장에 돌아왔고 팀 분위기 쇄신을 통한 팀 전력 극대화를 위해 2002년 8월 12일부터 1군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됐으며[24] 같은 해 시즌 뒤 조범현 전 삼성 코치가 SK 감독으로 부임하자 2군 투수코치로 돌아왔고[25] 다음 해인 2003년 투수진이 붕괴되자 그 해 8월 14일 김봉근 1군 투수코치와 보직을 맞바꿨으며[26] 2004년 시즌 후 포스트시즌 실패에 따른 문책성 해고에 맞춰 SK와의 계약이 해지되어 롯데 자이언츠 2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2005년 10월 11일 LG 트윈스의 투수코치로 영입됐으나[27] 2006년 시즌 초 최하위로 떨어져 이순철 감독이 사퇴하면서 2군으로 내려갔다가[28] 같은 해 말 팀을 떠나야 했다[29].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모교인 인천고등학교에서 야구부 감독을 역임했고, 2011년 LG 트윈스의 투수코치로 돌아왔으나, 그 해 LG 트윈스가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당시 감독이었던 박종훈이 사임했을 때 동반 사임하고 미국으로 갔다. 2013년 NC 다이노스 잔류군 선임 코치 겸 투수코치로 영입됐다.[30] 2016 시즌 후 한화 이글스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됐다.[31]

출신 학교

각주

  1. 김재동 (2018년 7월 19일). “[김재동의 만남] 한화 '화수분지기' 최계훈 감독 "좋은 팀 만들겠습니다". 스타뉴스. 2022년 3월 9일에 확인함. 
  2. “崔桂勲(최계훈)(仁川高投手(인천고투수))仁荷(인하)로”. 조선일보. 1980년 1월 11일. 2024년 9월 16일에 확인함. 
  3. 이방원 (1981년 9월 23일). “高校野球(고교야구) 샛별들은 어디로…”. 경향신문. 2024년 9월 16일에 확인함. 
  4. “스타플레이어 어디로…(1) 人氣(인기)선수 大學(대학)에 몰려 高校野球(고교야구)”. 경향신문. 1979년 10월 30일. 2024년 10월 2일에 확인함. 
  5. “◇인천—동대문상”. 조선일보. 1979년 4월 24일. 2024년 10월 6일에 확인함. 
  6. 이기홍 (1980년 2월 1일). “仁荷大(인하대) 투수 崔桂勳(최계훈) "高校(고교)때 優勝(우승)못한 울분꼭 풀겠다". 경향신문. 2024년 10월 6일에 확인함. 
  7. 박태훈 (2017년 4월 15일). “[박태훈의 스포츠+] 유니폼 41번 톰 시버, 뉴욕 메츠 WS우승시킨 311승 투수”. 세계일보. 2024년 10월 6일에 확인함. 
  8. “[아웃사이드파크]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진기록과 명승부”. 일요신문. 2018년 3월 25일. 2023년 1월 1일에 확인함. 
  9. 금광옥 “월급은 현찰, 연패 때도 술판…삼미, 화끈했어” - 스포츠동아
  10. 김홍식 (1994년 11월 27일). “코치구함 프로야구-해태.OB등 구인난 삼성은 해외 눈돌려”. 중앙일보. 2020년 7월 10일에 확인함. 
  11. “스포츠 게시판”. 조선일보. 1989년 11월 12일. 2020년 7월 10일에 확인함. 
  12. 연합 (1991년 11월 18일). “<프로야구 화제>-코칭스태프 재정비 활발”. 연합뉴스. 2020년 7월 10일에 확인함. 
  13. “[스포츠 단신] 태평양 梁승관코치 영입”. 경기일보. 1994년 1월 6일. 2020년 7월 10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4. “박(朴)철순 1군(軍)코치 승격 OB,코치진 일부개편”. 조선일보. 1987년 10월 28일. 2020년 6월 1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0년 7월 10일에 확인함. 
  15. “스포츠 게시판”. 조선일보. 1990년 1월 10일. 2020년 6월 1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0년 7월 10일에 확인함. 
  16. 연합 (1991년 10월 24일). “돌핀스, 수석코치에 柳永洙씨 내정”. 연합뉴스. 2020년 7월 10일에 확인함. 
  17. “다이아몬드 쌍방울,투수成영재등 2차지명”. 문화일보. 1992년 11월 24일. 2020년 7월 10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8. “롯데 수비코치 권두조씨 선임... OB 수석코치에는 강남규씨”. 중앙일보. 1989년 11월 30일. 2020년 7월 10일에 확인함. 
  19. “장명부 롯데 코치 계약 1년간 연봉 4천 만원”. 중앙일보. 1989년 11월 30일. 2020년 7월 10일에 확인함. 
  20. 정의길 (1990년 11월 3일). “프로야구 무원칙'감투바꿔쓰기'성적부진·구단불화 빌미 4구단 물갈이”. 한겨레신문. 2020년 7월 10일에 확인함. 
  21. 문갑식 (1991년 12월 7일). “프로야구 노장들"방출(放出)찬바람". 조선일보. 2020년 7월 10일에 확인함. 
  22. “내야 수비력 순위"가늠자". 동아일보. 1992년 6월 17일. 2022년 1월 25일에 확인함. 
  23. “金(김)시진 태평양투수코치 계약”. 동아일보. 1993년 1월 7일. 2022년 1월 25일에 확인함. 
  24. “<프로야구소식> SK, 코칭스태프 보직 변경”. 연합뉴스. 2002년 8월 12일. 2020년 4월 20일에 확인함. 
  25. “<프로야구소식> SK, 코칭 스태프 보직 확정”. 연합뉴스. 2002년 12월 1일. 2020년 4월 20일에 확인함. 
  26. “<프로야구소식> SK, 1.2군 코칭스태프 맞교환”. 연합뉴스. 2003년 8월 14일. 2020년 4월 20일에 확인함. 
  27. “LG, 최계훈 코치 영입”. 《연합뉴스》. 2005년 10월 11일. 2016년 6월 12일에 확인함. 
  28. 김은진 (2006년 6월 7일). “다시 태어나는 LG, 코칭스태프 '보직 변경'(종합)”. 조이뉴스24. 2020년 4월 20일에 확인함. 
  29. 박세환 (2006년 10월 10일). “[프로야구]올 꼴찌 수모 LG 대수술. 세계일보. 2020년 4월 20일에 확인함. 
  30. NC, 최계훈 코치 잔류군 코치로 영입 - 일간스포츠
  31. 한화, 2군 감독에 최계훈 전 NC 코치 - 연합뉴스
  32. 김재동 (2018년 7월 19일). “[김재동의 만남] 한화 '화수분지기' 최계훈 감독 "좋은 팀 만들겠습니다". 스타뉴스. 2022년 3월 9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