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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다이 번'''({{llang|ja|仙台藩|센다이한}})은 [[일본]] [[에도 시대]]의 [[일본의 번|번]]으로, [[무쓰 국무쓰국]] [[미야기 군미야기군]] [[센다이 성]]에 거점을 두었다. [[도자마 다이묘]]인 [[다테 마사무네]]가 입번하였고, [[폐번치현]] 때까지 [[다테 가문]] 본종가가 통치했다.
 
[[지번 (역사)|지번]]으로 [[이치노세키 번이치노세키번]], [[이와누마 번이와누마번]]이 있다.
 
== 번의 역사 ==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하에서 다테 마사무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마에다 도시이에]]에 필적하는 대[[다이묘]]였다. 히데요시는 사망 직전에 [[고다이로]]를 지명하고 후사를 의탁하는데, 마사무네는 [[호조 우지마사]], [[호조 우지나오|우지나오]] 부자와 결탁하여 히데요시와 적대하였기 때문에 고다이로로 지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히데요시 사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마사무네와 인척관계를 맺었고, 마사무네도 이에야스에 협력하여 마에다 도시이에, [[이시다 미쓰나리]] 등과 대립하였다. 이에야스와 마사무네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과 나머지 고다이로와 미쓰나리의 세력 간의 대립은 점차 첨예해지면서 결국 [[세키가하라 전투]]로 이어지게 된다. 마사무네는 이러한 분쟁의 혼란을 틈타 옛 영지를 회복하려 했고, 이에야스는 그런 마사무네에게 세키가하라 전투의 직접적 요인을 제공한 [[우에스기 가게카쓰]]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중요한 역할을 부여했다. 그러면서 이에야스는 동군이 승리하게 되면 히데요시에게 몰수당한 [[다테 군다테군]], [[오키타마 군]] 등의 옛 땅을 돌려주어 소유 영지를 100만 석까지 올려주겠다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전투가 장기화될 것이라 예측한 마사무네는 자신의 영역을 늘릴 전략을 세워, 우에스기의 영지로 쳐들어가 [[갓타 군갓타군]]을 점령했고, 우에스기 세력에 쳐들어간 [[모가미 요시아키]]에게 원군을 보냈지만 전투에 있어서는 방관했다. 또 같은 동군인 [[난부 노부나오]]가 다스리는 [[와가 군와가군]]에서 옛 영주 [[와가 다다치카]]를 지원하여 [[와가 잇키]]를 일으켰다. 하지만 중앙에서의 전투는 짧은 기간 내에 끝나버렸고, 마사무네가 취한 영지는 그리 많지 않았으며 잇키 선동도 실패로 돌아갔다. 이에야스는 마사무네의 배신 행위를 눈감아주는 대신 100만 석 영지 약속을 무효로 했다. 노골적인 야심으로 인해 이에야스에게 의심을 사게 된 마사무네는 세키가하라 전투 승전 이후에도 영지로 복귀하지 못하고, [[에도]]의 공사 작업에 동원되는 등 2년 동안을 영지 밖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게이초]] 6년([[1601년]])에 마사무네는 [[고쿠분 가문]]의 거점인 지요 성을 수축해서 [[센다이 성]]으로 개칭하고, 거점을 [[이와데야마 성]]에서 센다이로 옮겼다. 마사무네를 초대 번주로 한 센다이 번(62만 석)은 여기에서 성립되었다.
 
게이초 18년([[1613년]]), 마사무네는 센다이 번과 [[스페인]]의 태평양 무역을 도모하여, 가신 [[하세쿠라 쓰네나가]]를 외교사절로 임명하여 하세쿠라 일행 180여 명을 [[멕시코]], 스페인, 그리고 로마에 파견했다. 당시 서일본 지역의 번들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지역과의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직접 유럽과 교역을 하게 되면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사절 파견에 작용했다. 혹은 이 외교 사절의 진짜 목적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일본으로 불러들여 마사무네 군과의 공동작전에 참여시켜 도쿠가와 막부를 타도하려는 데에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사절 파견은 이듬해 막부가 크리스트교 금교령을 내리고 신도들과 선교사들을 탄압하자, 이 정보를 스페인이 입수함에 따라 결국 교섭이 실패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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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야스 사후 마사무네는 결국 거병과 막부 타도를 단념하고 도쿠가와 막부의 중진이 되는 길을 택했다. 마사무네의 뒤를 이은 2대 번주 [[다테 다다무네]]는 내정에 충실함과 동시에,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양녀 [[후리히메]]를 정실로 맞이하는 등 쇼군 가문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고, 막부에 대한 순종적 태도를 보여 막부의 경계를 풀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후리히메의 자식으로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다테 미쓰무네|미쓰무네]]가 요절하면서, [[구시게 다카무네]]의 딸 [[가이히메]]의 소생인 [[다테 쓰나무네|쓰나무네]]가 후계자가 되었다. 가이히메의 언니 [[구시게 다카코]]가 [[고사이 천황]]의 생모로, 쓰나무네는 천황의 종형제가 되는지라 막부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하며, [[다테 소동]]이 일어나자 쓰나무네는 은거 처분을 받았다. 그 뒤를 이은 번주 [[다테 쓰나무라]]는 중신들 간의 대립에 빠져 다시 가문 소동에 휘말리게 되었다. 5대 번주 [[다테 요시무라]]는 혼란을 극복하고 선정을 베풀어, 중흥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요시무네는 번 재정을 재건하는 한편, 막부에 동전 주조를 요청하여 센다이 번 내의 동 광산을 이용한다는 조건하에 승인받았다. 그리하여 [[이시노마키 시|이시노마키]]에 동전 주조장을 설치하고 [[간에이쓰호]]를 주조했다. 그 외에도 비단, 말 생산을 장려하였으며, 6대 번주 [[다테 무네무라 (에도)|다테 무네무라]] 때에도 이러한 재정책은 유지되었다.
 
[[메이지 유신]] 무렵, 센다이 번은 [[보신 전쟁]]에서 [[오우에쓰 열번동맹]]의 맹주로 등장하였다. [[아이즈 번아이즈번]]과 [[쇼나이 번쇼나이번]]에 대한 동정적 분위기와 신정부의 횡포에 대한 반발에 힘입어 떨쳐 일어난 센다이 번은 일본 내에서도 상당한 병사 수를 자랑하고 있었고, [[에조치]] 경비 임무를 맡은 터라 신정부군에도 뒤지지 않는 화력과 병기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사쓰마 번사쓰마번]], [[조슈 번조슈번]]이 [[영국]]으로부터 구입한 화기와의 성능 차이 등으로 번벌 정부에 밀리게 되었다. [[시라카와 성]] 공방전에서는 아이즈 번과 함께 북부 정부의 주력군으로서 분전하였고, 히라카타 전선에서도 신정부군과 교전하였으나, 양쪽 전선에서 패하고 퇴각했다. 센다이 번은 북상해 오는 신정부군에 맞서 격전을 벌였으나 [[소마 나카무라 번]]의 배신으로 대패, 1266명이 전사하면서 결국 투항했다. 메이지 정부로부터 적군의 맹주라는 책임을 추궁당하고, 센다이 번은 28만 석으로 감봉되었으며, 이 급격한 감봉으로 인해 센다이 번의 번사들은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되었다. 번사들 중에는 살 길을 찾아 귀농하거나, 신천지를 찾아 [[홋카이도]]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들에 의한 홋카이도 개척은 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한편 센다이 번의 주요 시설들은 신정부에 의해 접수되어, 센다이 성은 군사시설로, [[와카바야시 성]]은 형무소 및 수용 시설로 사용되었다. [[폐번치현]]으로 센다이 번은 폐지되어, [[센다이 현]], [[가쿠다 현]], [[도메 현]], [[이사와 현]]으로 나뉘었다. 최종적으로는 북부 일부는 [[이와테현]]으로, 소마 [[신치 정신치정]]은 [[후쿠시마현]]으로 편입되었고, 그외 대부분의 지역은 [[미야기현]]에 들어갔다.
 
== 역대 번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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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 [[다테 가문]]
* [[이치노세키 번이치노세키번]]
* [[이와누마 번이와누마번]]
 
== 외부 링크 ==
* https://web.archive.org/web/20110607051630/http://www.asahi-net.or.jp/~ME4Kme4k-SKRIskri/han/mutudewa/sendai.html
* https://web.archive.org/web/20111104050657/http://m-donchan.hp.infoseek.co.jp/
* https://web.archive.org/web/20070703204433/http://www.town.shiraoi.hokkaido.jp/ka/jin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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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의 번}}
 
{{전거 통제}}
 
[[분류:일본의 번]]